| 가을바람 온 숲에 불어 모두가 처량한데도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29) |
| 2017년 05월 01일(월) 1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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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 소실
봄에 났다 가을 죽음 자연의 이치거늘
팔월에 배꽃 피었다 아직 듣지 못했네
바람이 처량한데도 봄님 하나 남으니.
春生秋殺自平分 八月梨花古未聞
춘생추살자평분 팔월이화고미문
萬樹西風方慘慄 一枝留得少東君
만수서풍방참률 일지류득소동군
우연한 상황을 보면서 시를 읊었던 것도 핵심적인 주제는 있다. ‘실제(失題)’랄지 ‘무제(無題)’랄지 내용적인 핵심적 ‘주제(主題)와 제재(題材)’는 거의 전부가 존재한다.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익어가는 것이 온갖 생물의 생존과 번식의 법칙이다. 인간도 이 순환적인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은 외예적인 상황을 목도했던 모양이다. ‘봄에 났다가 가을에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한 가지 끝에만 아직도 봄님이 남았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봤다.
‘가을 바람이 온 숲에 불어 모두가 처량한데도(偶吟)’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김창협 소실(金昌協 小室)이다. 조선 대부분 여류시인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시인의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에 났다가 가을에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 팔월에 배꽃이 피었다는 말은 옛적부터 들은 적이 없네// 가을바람이 온 숲에 불어 모두가 처량한데도 / 오직 한 가지 끝에만 아직도 봄님이 남아 있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우연히 읊다]로 번역된다. 시제를 ‘우연히 읊다’ 혹은 제목도 없이 ‘무제’라고 했더라도 시적인 ‘제재’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곧 시적인 객관적 상관물이나 시인이 나타내려고 하는 시상은 꼭 있는 뜻이다. 본 시제도 봄에 피워야 할 배꽃이 음력이 팔월이 돼 가을바람이 소소한데도 처량하게 펴있음이란 시상을 떠올리면서 따스한 봄님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상기한다. 이런 변태적인 현상은 현대로 들어서면서 더 많이 보인다.
시인은 모든 생물은 봄에 태어났다가 여름에 생장하면서 가을에 죽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숙명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을 들춰내 보인다. 그러면서 팔월에 배꽃 피었단 말은 옛부터 들은 적 없음으로 시상을 떠올린다. 이는 현대로 말한다면 그야말로 기현상인 셈이다.
화자의 시적인 반전은 아끼고 싶은 봄이 아직도 떠나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암시해 보인다. ‘계절이 소소한 바람이 온 숲에 불어 모두가 처량한데도, 느닷없는 한 가지 끝에만 아직 봄님이 남았구나’라는 시상 덩이를 읊어냈다. 떠나지 못한 봄, 미련이 있어 보이는 봄을 아끼는 마음을 담아냈다.
※한자와 어구
春生: 봄에 나오다. 秋殺: 가을에 죽다. 自平分: 자연의 이치. 자연의 고른 분배. 八月: 팔월. 梨花: 배꽃. 古未聞: 예부터 들은 적이 없다. // 萬樹: 온갖 나무. 西風: 서풍. 가을바람. 方: 바야흐로. 慘慄: 처량하다. 一枝: 한 가지. 留得少: 조금 남아 있다. (아직도) 조금은 남다. 東君: 동군. 봄바람.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