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이홀 오월특별전 ‘검은하늘 그 날’展 정영창 작가 “더 많은 흔적·기록으로 5월 알려야” 3년 전 ‘세월오월’ 그리며 했던 약속 성사 ‘윤상원’ ‘김기춘’ ‘전일빌딩’ 등 20점 선봬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2017년 05월 16일(화) 19:07

오는 31일까지 광주대안문화공간 메이홀에서 오월특별전 ‘검은하늘 그 날’을 여는 정영창 작가가 자신의 작품 ‘전일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영창 作

“메이홀의 ‘오월특별전’ 출품작들을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땐 부담이 됐어요. 광주 5월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됐었죠. 핏빛으로 물들었던 과거를 직면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에 머무르면서도 늘 이 전시를 생각하고 고민했어요.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틈틈이 망월동 묘지, 옛 전남도청, 분수대, 상무관 등을 자주 드나들면서 영감을 받았죠.”

지난 15일 광주대안문화공간 메이홀(동구 문화전당로 23번길 1) 오월특별전 전시장에서 만난 정영창(60) 작가는 이번 전시를 열기까지 느꼈던 심적 부담감을 이같이 토로했다. ‘검은하늘 그 날’을 주제로 하는 정 작가의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이 전시는 3년 전 약속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라 더욱 뜻 깊다. 정 작가는 2014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내걸릴 예정이었던 ‘세월오월’을 메이홀에서 홍성담 작가 등과 함께 그렸다. 이때 메이홀 측에서 정 작가에게 3년 뒤 5월 그림을 그려달라고 제안했었다.

“광주 5월을 그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가을 금남로에서 백남기 농민의 노제에 참여했는데, 시민 행렬이 1980년 5월을 떠올리게 했어요. 마음 속으로 ‘이제야 5월을 그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죠.”

‘윤상원’

사실 정 작가는 5·18 현장을 몸소 체험하지는 않았다. 전두환 정권의 군부독재가 시작됐던 시기, 정 작가는 부천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각종 매체로만 5월을 접하면서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독일 유학이다. 1983년 독일로 건너가 그림을 공부했다. 한국처럼 분단 현실을 겪고 있는 독일 예술가들은 정치·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작가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머무르면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고민 끝에 처음으로 그린 것이 ‘윤상원 열사’다. 수많은 5·18 희생자 중 윤상원 열사가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판단해서다. 작가는 ㈔윤상원기념사업회로부터 자료를 받고 인물화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윤상원 열사의 얼굴 속에는 우윳빛 무언가가 흐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당시 희생자들이 흘린 ‘피’이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윤상원 열사 말고도 또 하나의 인물화가 눈에 띈다. 바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핵심 세력 중 한명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작가는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한 김 전 실장에 대한 분노를 담아 이 작품을 그렸다.

‘김기춘’

“윤상원 열사를 그릴 땐 인물과 대화를 하고 마음을 나눴다면, 김기춘 전 실장을 그릴 땐 끝까지 분노와 미움이 가시지 않았어요. 계속 그리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를까봐 최대한 빨리 그렸죠. 특히 김 전 실장을 ‘흡혈귀’나 ‘좀비’라고 생각하고 입가에 피가 흐르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21세기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또한 최근 이슈가 되는 전일빌딩 총탄에 대한 그린 작품도 있다. 검은 하늘 속 검은 총탄이 박혀 있는 전일 빌딩을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완성해 온 것이에요. 그림 완성 이후 최근에야 뉴스가 떴더라고요.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저 작품을 그린 건 우연이자 필연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옛 전남도청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다수 전시돼 있다. 작가는 옛 도청 복도와 방송실을 그렸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 임시개방으로 공개된 ‘열흘간의 나비떼’ 전시에 다녀왔어요. 제가 그림으로 표현한 복도, 나무 창문, 옛 도청에 새겨져 있던 마크 등이 그대로 남아있더라고요. ‘5월 그림을 그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밖에도 전시에서는 윤상원 열사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을 캔버스에 담은 ‘일기’, 세월호 노란 리본을 그린 ‘REMEMBER’, 촛불현장을 사랑으로 풀어낸 ‘촛불’, 연인의 사랑으로 풀어내는 ‘LOVE’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보니 5월의 흔적과 기록이 더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시민에게 더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또한 전국 순회전을 통해 5월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정 작가는 목포 출신으로 독일 카셀 미술대학,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2004부산비엔날레,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 ‘정영창전’ 등에 참여했다. 작품 관람은 전시 기간 중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가능하다.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