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형배의 정치상상] 대통령의 5·18기념사, 아름답고 무섭다 |
| 2017년 05월 23일(화)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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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가 어떤 뿌리에 기초해 있고 맺으려 하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취임사나 다름없는 5·18기념사를 통해 밝혔다. 결국 5·18기념사를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은 새 정부의 성격과 지향, 새 대통령의 통치 방향과 스타일을 알아보는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문단만 예시로 삼아 보자. 문 대통령은 먼저 이렇게 말했다.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헌법은 국가공동체의 최고 합의를 문자로 새긴 것이다. 여느 문자와 헌법 문자의 차이점은 ‘강제력’ 유무이다. 헌법에 맞지 않는 법률은 고쳐야 하고, 헌법을 위반한 행동은 처벌 받는다. 대통령도 끌어 내릴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수개월 전에 발생했다.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담는다는 것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국민들이 계승하고 기억하고 배워야 할 최고의 역사가 5·18이라는 뜻이다. ‘명예회복’을 넘어 ‘명예자리매김’으로 5·18의 과제가 재설정되는 순간이다.
5·18을 북한군과 연계시키려는 일부 인사들의 노력은 사실과도 맞지 않고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가장 악랄한 행동이다. 그 행동의 주체가 지만원이나 조갑제류의 ‘개인’이라면 어느 사회에서든 발생하는 극소수의 ‘일탈’로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제1야당(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는 5·18기념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바로 그 자리에서 “북한군 개입 진상 규명” 운운했다.
개인의 일탈과는 차원이 다른 입법부 공조직의 전략적 언술이다. 발언의 면책특권이 부여되는 국회도 아니고 국립묘지 뜰 앞에서 행한 도발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아니면 말고’ 식 흑색선전을 제어할 강제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5·18정신이 헌법전문에 담겨 있었다면 정우택 대표는 결코 그런 발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법전문에 5·18정신이 담기는 것의 효과는 상징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여러 방면으로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렇게 말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새 정부의 뿌리를 밝히는 대목이다. 5·18-6월항쟁-김대중정부-노무현정부-촛불혁명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다는 선언이자 그 시절들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향후 국정을 추진해 가겠다는 포고이다. 목표는 민주주의 복원, 민주주의 꽃 피우기이다.
복원은 폐허를 전제한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이전 정부의 성격을 ‘반민주’로 규정하고 있다. 복원의 역사적 동력은 민주항쟁과 민주정부에서 찾고 있다. 37년 전의 5·18이 시원의 힘을 제공한다면, 엊그제의 촛불혁명은 지금 새 정부에 직접적인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다. 적폐청산 의지를 확실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 네 글자를 활용하고 있다.
전략을 분명히 하면서도 전술은 세련되게 감춘 5·18기념사였다. 새 정부의 행보 또한 기념사와 꼭 닮았다. 논쟁적인 개혁과제를 추진하고 적폐청산을 분명히 하되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경우 역공을 하는 이들이 적폐가 된다. 그러니 자유한국당도 검찰도 쉽게 저항하지 못한다. 대신 민주주의 역사와 국민 앞에서는 겸손하다. 그 반대편의 흑역사와 적폐세력들에게는 단호하다. 하지만 합법적인 수단과 절차로 단호하다. 문 대통령 5.18기념사, 지금까지의 국정드라이브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기분 좋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