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C 프린지페스티벌 인터내셔널 참관 후기 이현 |
| 2017년 06월 13일(화) 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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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무성영화 시대의 진미는 변사였다. 자막을 통해 해설과 대사를 전달하는 곳도 있었지만, 자막기술이 발달 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변사의 몫이었다. 무대 옆쪽에 자리하고 앉아, 스크린에 비친 장면에 맞춰 이수일도 되고 심순애도 되어 말하며 관객들을 웃고 울렸다. 해설까지 책임졌던 변사의 목소리 연기는 푹 빠져 웃고 울다가 집으로 돌아 온 날에는 잠도 쉽게 들지 않았다. 밤이 새도록 변사가 되어 이수일도 되었다가 심순애도 되기를 반복했다.
챨리 채플린의 무언극 또한 흥미로웠다.
낡은 중절모에 헐렁한 바지, 몸에 꽉 끼는 재킷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작은 콧수염을 붙인 채플린의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몸짓과 표정만으로 모든 걸 표현해 내는 채플린의 연기에 자꾸만 가슴이 쿠구궁 뛰었다. 길을 걷다가도, 채플린의 재밌고도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생각나 혼자 따라하며 깔깔깔 웃기도 했었다.
얼마 전, 광주에서 만나는 세계 최고의 거리극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에서도 가슴이 쿠구궁 뛰었다. ‘프린지페스티벌’은 1947년, 여덟 명의 배우들이 공터에서 무허가로 공연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이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이 축제가 열린 주변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하였고, 이 공연들은 사전에 기획된 것도 아니고 조직적인 체계도 없었지만 독특하고 참신한 형식을 선보임으로써 관객들과 언론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 후 해가 거듭할수록 참가하는 공연단체들의 수가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프린지페스티벌’은 에든버러페스티벌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한국적 프린지의 실험과 모색’을 모토로 개최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에 진행된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광역시가 공동주최하고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하여 이루어진 축제로,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거리극이었다.
누구나 마음껏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텐트를 활용한 설치미술, ‘게으름의 낭만’(김정은작, 한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곳곳에 설치해 놓은 텐트 안에 자리하고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 엄마와 함께 배를 깔고 누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아빠와 함께 텐트에 누워 잠을 자는 아이들, 가족끼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쉼터의 낭만이었다. 똥의 변(便)과 변할 변(變), 우리말 동음이의어를 모티브로 하여 변화를 찾아 떠나는 변(便) 이야기인 랄랄라의 ‘변화’는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거렸다. 변이 꽃(花)이 되기 위해, 우리의 삶이 변화하기 위해, 걷고 달리며 어둡고 컴컴한 터널도 지나 쉼 없이 정진하는 그녀의 뜨거운 몸짓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는 과연 변화를 위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 걸까. 아프기도 전에 변화를 포기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온전히 극 속의 인물이 되어 혼신을 다해 말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녀의 열정만큼이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극단 실부플레의 ‘우스꽝스러운 테니스 커플’ 또한 즐거웠다. 관람 내내 웃음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벌떡 일어나 함께 하고 싶어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말한 마디 하지 않고도, 몸짓과 표정만으로 충분히 서로 느껴지는 무언극의 매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젠, 그저 보고 느끼는 시대는 지났다.
모두가 함께 호흡하며 소통하는 거리극처럼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기는 축제의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