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다양성 인정·문화적 자존감 바탕…‘새로움 창조’ |
| 2017년 06월 15일(목) 1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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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째 주는 프랑스도 한국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선출된 의미 있는 주였다. 대선 기간이 비슷한 시기인 탓도 있었겠지만, 이번엔 한국에서도 프랑스 대선에 많은 관심과 기사가 작성된 것은 촛불 대선으로 치러진 우리의 정치적 지형이 프랑스 혁명과 비교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엠마뉴엘 마크롱은 지난달 7일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66.06%의 지지를 얻어 33.94% 득표에 그친 극우정당 국민전선(FN·Front national) 마린 르펜 후보를 32.12%포인트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그는 불과 1년 전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을 사퇴한 뒤 유럽통합과 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 문제를 고치되 경제적으로 전진하면서 고치자는 정치운동을 제안하며 출마했다. 신당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당한 마크롱은 극우세력의 집권을 거부하고 기득권세력의 부패와 무능에 분노를 토해내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권자들은 반무슬림, 반난민 공약을 내세우고 EU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한 르펜을 저지하기 위해 차악인 마크롱을 선택했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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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은 ‘기존 체제를 싹 갈아엎는 완벽한 청산, 신체제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같은 해 12월 벨기에에서 세계 최장 541일의 무정부 상태를 종료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킬 당시 벨기에 정치철학자들 사이에서 그 개념이 다듬어졌다. 2017년 프랑스에서 데가지즘의 개념을 언급한 이는 극좌파인 멜랑숑이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 정치 개념으로 데가지즘이 새롭게 소환된 이유는 프랑스 경제의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정치, 사회 전반적인 불만에 기초해, 다 갈아엎자라는 유권자들의 저항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의 최대 수혜자는 기성 체제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 심리를 공략한 마크롱이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에도 기득권, 적폐에 대한 염증과 새로움을 향한 열망이 투영됐다. 대선기간 내내 관통한 화두는 프랑스는 데가지즘, 한국은 적폐청산이다. 문득 데자뷰가 느껴진다.
▶ 인종차별·약자 소외에 저항하는 프랑스 청소년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쉽게,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다른점이 있다. 4월에 있었던 1차 대통령 투표 이후, 르펜과 마크롱으로 압축된 다음날, 극우에 반대하기 위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시민 모임’이 이뤄졌다. 파리와 여러 마을에서 대학생과 고등학생 조합, 반인종주의 조합(SOS-Racisme)은 4월 25일, 월요일 저녁 6시부터, 국민전선(FN)에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고등학생들의 정치적 성명이다. 프랑스는 다양한 계층, 집단의 조합들이 존재한다.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조합도 종종 정치적인 이슈에 함께 동참하곤 한다. 경쟁사회에 내몰려 있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치참여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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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부터 정치적 관심, 혁명적 사고,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 왜 이 나라가 혁명의 나라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물론 프랑스의 기성세대의 눈에도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성명을 내는 고등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요즘 어린애들은 말야’ 라는 말로 가끔씩 철없는 짓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는 이렇게 어린 청소년들부터 다양한 계층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들을 위한 인권과 소외 계층에 대한 문제 또는 정치적 사안에 자유롭게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는 그들을 저지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은 소수 집단의 목소리일 뿐이며 또 제약을 받는다. 우리의 청소년들, 아이들도 조금씩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수능, 학습만을 가치로 삼는 학교라는 또 다른 감옥, 파놉티콘에 갇혀 있지 않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이곳을 뛰쳐나와 외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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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거에서 항상 이슈화 되는 문제 중 하나는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혜택 문제다. 극우 정당은 이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곤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결국 다수의 시민, 고등학생들은 반무슬림, 반난민 공약을 내세우는 르펜을 저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프랑스에 여행 오는 한국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무슬림, 흑인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피부색에 따른 계급적 차이, 선입견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먼 타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난처함을 느낀다.
몇 해 전, 샤를리 테러 총격과 인질 사건이 있은 뒤, 미국 Fox 뉴스에서 파리의 일부 지역을 ‘NO GO ZONES’으로 선정하고 ‘비무슬림 금지지역’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 뉴스가 나간 후, 안 히달고 파리 시장은 “파리에 대한 나쁜 편견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며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며, 미국 Fox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Fox 방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사과를 이끌어내는 프랑스의 당당한 모습은 문화적 자존감이 국제 관계에서 어떻게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후 파리시는 높은 실업률, 각종 범죄, 청소년 우범지역으로 인식이 돼 있는 동네들을 ‘WE GO ZONES’ 이라고 명명하며, 우선적으로 20개 지역을 선정했으며, 찾아가기 위한 동네로 탈바꿈하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계획했다. ‘WE GO ZONES’으로 지정된 지역은 범죄율이 더 높거나 회피할 만한 곳이 아니라 다만 문화적 혜택이 활성화되지 않아 외부인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장소라고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문화 편중을 줄이고 계층의 이질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기획됐다. 각종 문화행사가 공공장소와 거리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기획해 주민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WE GO ZONES’은 문화예술이 숨쉬는 지역으로 탈바꿈시켜 타 지역 주민들도 쉽게 발걸음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심리적 경계선을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라고 해서 인종차별이 전혀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다양한 인종과 함께 사는 법에 익숙하며, 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프랑스교육헌장(라이시테)은 학생 개개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되 학교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성향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으로서 종교적, 문화적 성향이 다른 각 사람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는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는 모든 학생의 평등과 시민으로서의 평등을 보장하는 개념으로서 배타주의와 추방을 거부하며 프랑스 국가 건설 이념인 박애주의와 상호존중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은 방문하기도 전부터 몽마르트의 흑인들, 북역 주변은 위험하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여행자들이 느끼는 위험 중 대부분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인종과 편견,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다. 타 문화권 사람들을 비하하는 언어는 결국 우리 또한 그와 같은 대상으로 포획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상대 문화의 비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존감이 미숙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안 히달고 파리 시장이 Fox 방송으로부터 얻어낸 사과를 보라. 좀 더 자기 합리화해 말한다면,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적 다양성에 아직은 서툰 탓이리라. 우리도 타인에게 비칠 우리의 자화상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차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