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인류 문명과 개발의 패러독스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북스 1만4천원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2017년 06월 25일(일) 19:40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속도에 대한 섬뜩한 내용이 나온다. 붉은 여왕이 주인공 엘리스에게 “제 자리에 있고 싶으면 끊임없이 뛰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구절이다. 이는 자신이 움직일 때 주변의 환경이나 경쟁상대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 배 이상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세상은 아이러니 하게도 열심히 살아도 오히려 뒤처지거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세계화 그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끝이 없는 결승점을 향해 무수한 반칙과 속도경쟁, 그리고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멈추기를 주저한다. 어쩌면 끝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참담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모른다.

인간은 기술진보에 의해 몸은 편해지고, 고된 육체적 노동의 시간은 훨씬 단축됐다. 반면 마음은 항상 타인과 비교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각종 마음 질병의 원인을 성과사회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부의 불평등, 외모 중심적 사회, 서열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오래된 미래’에서는 상업광고와 소비중심 문화에 지나치게 노출된 아동들은 우울증과 불안감, 자존심 상실, 심신 불만족이 원인이 돼 두통이나 복통을 앓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왜 세상은 끊임없이 위기로 비틀거리는 걸까?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던가? 예전이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하는 의구심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녀는 티베트 고원과 고대문화의 고장 라다크에서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미래를 향하는 길이 꼭 하나가 아니라는 확신과 희망을 얻고,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삶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라다크는 해발 3천m가 넘는 고원 지대라서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4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함과 생동감이 넘쳐난다. 그들은 삶의 속도에 연연하기 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규칙적이고 충분한 운동을 하며 천연식품을 먹고 산다. 일상생활에서도 스스로 조정하고 통제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관료 조직이나 자본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 전통 생활방식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와 엄마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하는 회의, 축제, 잔치 할 것 없이 아이들은 항상 자리를 같이 한다. 심지어 노래와 춤과 술이 있는 모임에도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한다. 스스로 졸음을 느껴 잠이 들 때까지는 어른들과 함께 즐긴다.

라다크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곧 값진 경험과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마을 공동체에서 중요한 구성원이 된다.

현대식 교육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변화와 흐름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눈가리개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는 전통적인 기술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곳이 됐고 더 나쁜 것은 전통적인 것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교육은 순진한 아이들을 농촌에서 끌어내 도시로 데려간다. 결국 사람들은 화폐경제에 종속되고 만다.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라다크는 거센 소용돌이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화기의 등장은 편리성과 시간을 절약해 주었지만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사람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자동차는 가난한 사람에게 자욱한 먼지를 남겨놓고 질주하고, 전화기는 정서적 만남을 방해할 뿐이다. 그리고 정부기관에서 내놓은 작은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의 고질적 빈곤과 질병의 문제는 서구문명의 오랜 수탈과 침략의 원인”이라고 분노한다. 설상가상으로 자본주의 생활상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고, 정체성을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소외 현상은 또 다른 적개심과 분노의 이유가 됐다. 또한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은 현대문명과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상대적 절망감은 훨씬 더 치명적이다.

요즘 장밋빛으로 그려지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인간의 가치와 공동체가 소멸된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절대 고독과 상실감으로 넘쳐날 것이다. /도시·지역개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