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어머님 전상서’를 보고 김영식 남부대 교수

2017년 06월 25일(일) 19:46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해서 주변에 다양한 문화예술과 관련된 시설들이 잘 배치돼 있다. 사실 문화예술에 작은 관심만 기울여 본다면 주말을 이용해 좋은 공연과 행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최근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애꾸눈 광대 이세상 선생님의 새로운 공연 ‘어머님 전상서’를 봤다. 사실 연극공연은 큰 공연장보다는 작은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볼 때 배우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고 감정몰입이 더 잘되는 것 같아 자주 찾는 곳 중에 하나다.

누군가 지구와 어머니를 저울에 달면 누가 더 무거울까?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지구가 훨씬 더 무겁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오면서 느낀 많은 감정들을 종합해 본다면 어머니가 더 무겁다는 답에 틀렸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만큼 어머니에 대한 무게감은 크다고 할 것이다. 기존의 연극의 틀을 바꾸어서 어머니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다섯 나이에 시집을 간 어머니는 6·25때는 빨갱이로 오해 받은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하고 80년 5월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아들 때문에 한 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어머니는 평생 가난과 이념의 굴레 속에서 사시다가 덜컥 말년에 치매가 오게 되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다.

어느 가정이나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근대역사의 광주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느 집이나 몸이 아픈보모, 먼저 간 형제,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민주화 운동으로 자신의 삶이 만신창이가 된 과거의 청년들 등등. 어머니 전상서는 이세상(지현) 선생의 독백으로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전한다. 늙어 가는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서서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자신의 불효를 반성해 가는 한 인간의 작은 흐느낌을 보면서 어린 여고생도 울었고 중절모를 쓴 노인도 울었다. 문득 나의 어머니가 오늘도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게 하는 대목이였다.

물론 전문 연극인들처럼 화려한 감정연기나 독특한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목소리도 아닌 한 중년의 가슴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세상이다. 가족은 혼자만의 존재로서 남지는 않는다. 가족은 영혼의 거미줄처럼 서로 엮이고 엮여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그만큼 가족이라는 굴레는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이다. 가족을 너무 쉽게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이 연극은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현대인들에게 효(孝)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면 대부분 흥행에 실패를 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효를 말하면 눈물이 나고 어둡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제 원하면 언제든지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부모님을 만나지 않아도 돈을 송금해 드릴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계가 우리의 삶을 대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리움마저도 대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날씨가 더우니 낮에는 많이 돌아다니지 마세요 라고 걱정을 해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밥묵었냐? 밥묵고 댕겨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전화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신다. 아마도 어머니 전상서는 천국에 계시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거기서는 밥걱정 하지 말고 자식걱정 하시지 말고 편하게 쉬세요 라고. 속썩이는 자식이 있다면 그냥 조용히 손잡고 한번 볼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