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 사직동'] (8) 방치된 자원들 무관심과 세월 탓에 스러지는 소중한 역사의 현장

2017년 06월 28일(수) 18:52

일제강점기 광주일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최부자집은 2층 한옥으로 당시 최고의 목재를 사용해 지었다. 현재도 사람이 거주하고는 있지만 관리에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선조들의 얼이 깃든 문화자원이 우리의 무관심으로 세월의 뒤안길에서 방치되고 끝내 사라져버리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사직동도 마찬가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보다 더 애틋한 순애보가 있었던 함풍(함평)이씨(1806-1828)는 출가 전 효녀로 칭송이 자자했다. 19살에 정호직에게 출가한 함풍이씨의 부부지정은 남달라 병고에 있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육신마저도 약으로 봉양했다. 부부의 순애보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다. 남편이 죽자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음을 택하면서 남편과 함께 합장해 영원히 함께 하고자 했던 애틋함에 임금이 내린 효열정려문은 2000년대 초까지도 사동에 있었지만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져, 이제는 흔적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구용기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대표

▶ 흥학관과 최부자집

옛 광주천은 양림동에서 내려와 양파정을 돌아 다시 사직공원 방면으로 돌아 흘러갔다.

물줄기는 사동의 최부자집 앞으로 흘러서 노지다리를 거쳐 광주공원(성거산)쪽으로 흘렀다.

사동의 최부자집은 일제강점기 광주일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현준호, 정낙교와 더불어 광주부자로 알려진 최명구의 아들 최상현이 그의 큰 아들 최정숙에게 2층의 한옥 최부자집을 지어 물려줬다.

1936년 착공해 1942년 완공된 최부자집은 목재는 함경도산 목재를 활용했으며, 기와는 강진요에서 나온 구운 기와를 사용했다. 집의 원형은 현존하는 건물과 현재의 사직맨션 자리에 있던 독일 선교사의 사택을 포함해 건평과 대지 등 총 1천800평 규모의 저택이다. 집의 형태는 일본식이 혼합된 개량 한옥으로 건축 당시만 해도 본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솟을대문을 지나 중간에 또 하나의 행문을 거쳐야 했다. 집 울타리 주변에는 행랑채 등 여러 채가 저택을 보위하듯이 둘러싸는 모양새였으며, 저택에는 본채와 뒤쪽의 별채를 이어주던 인공의 연못과 다리가 있었다. 웅장한 저택은 외부에서 보았을 땐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다락을 포함해 4층 구조의 비밀스런 공간들은 이곳을 드나들던 이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최부자집의 솟을 대문.

현재 이집에는 최순 할머니가 집안을 대표해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지만 곳곳에는 관리 부실로 인해 기와가 떨어지고 기둥으로 사용하는 목재에는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처마 밑 서까래에는 누수로 인해 목재가 썩어가고 있어 현재의 상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최부자집도 기억 저편에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과 사직동 마을기업 꿈꾸는 거북이에서 최부자집의 문화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고 보존의 시급성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2014년 지역민들과 함께 최부자집을 대대적으로 단장하고 최부자집 일대에서 사직마을잔치를 하면서 언론과 행정 등 외부의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씨 집안은 대대로 토착 관헌의 집안이었지만 최명구 대에 이르러 큰 부자가 됐으며, 많은 돈을 번만큼 광주지역의 학교 건립, 도청 건립, 광주천 다리공사, 하천공사 등 크고 작은 공익사업에 기부했다. 또 후학 양성을 위해 향교에 후원했으며 지역청년들의 배움터를 위해 1914년 광산동 구시청 부근에 200평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 흥학관(興學館)을 건립, 기증했다.

흥학관은 이상재·송진우·안재홍·방정환 등의 초청강연회와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와 웅변대회·음악·연극이 공연됐으며 밤에는 야학을 열었다. 광주청년회·노동공제회 광주지회·전남노동연맹·신간회 광주지회·광주청년학원 등 각종 단체의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활동했던 정상호, 최한영, 한길상, 최종섭, 강석봉 등은 모두 흥학관에서 공부와 사교활동을 했다. 흥학관은 일제강점기 광주부로 사용권이 넘어가 광주식량배급조합 사무실로 쓰였고, 해방 후에는 초대 광주시의회 회의실로도 쓰였는데 광주시청이 계림동으로 이전하면서 철거됐다.

▶ 광주에 유일하게 남은 효자문 ‘남평문씨 쌍효문’

쌍효문은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유적이다. 남평 문씨 시채(時采)의 다섯 아들은 모두 효자였다. 장남 장갑(章甲 1798-1832)과 4남 장섭(章燮)의 효성이 지극해 칭송이 자자했다. 부친의 병환에 지성으로 2년 동안을 한결같이 간호했으며, 임종에 임해서 단지 수혈하는 등의 정성을 다했다. 상을 당하자 예제(禮制)대로 장사하니, 효자로 칭해지면서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 귀감을 삼고자 국가에서 쌍효문을 건립했다.

1867년 고종임금은 장갑에게 정삼품인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승계 추증해 효행탁이의 교지를 내렸고, 아우인 장섭에게는 그의 효행과 학덕을 칭송해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과 효행탁이의 교지를 내렸다.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기 위해 건립한 쌍효문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붕괴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내부에는 정려기외(程閭記外)에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1903년 9월 25일에 효자 정려문을 짓기를 명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10년 정도 있다가 초가집으로 효자비를 세우고 다시 20년 후에 기와집을 지었다. 지금의 형체인 기와집이 된 것은 1930년경이다.

200여 년의 역사와 지극한 효심을 품은 ‘남평문씨 쌍효문’의 현재 상태는 처참하다. 관리가 전혀 안 된 상태로 폐기물이 방치돼 있어 쓰레기장을 연상케 하는데다 기와는 곧 무너질 듯 내려 앉아 붕괴의 위험까지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곳이 유적임을 알게 해주는 ‘쌍효문’ 관련 현판 두 세 개가 간신히 자리보전 하고 있어 이곳이 사적임을 알리고 있다.

▶ 인류 평화·희망 표현한 녹성상회

광주천에서 사직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 오른쪽 2층 규모의 양옥은 1931년 김후옥이 건물 외벽에 녹색의 별을 부착하고 운영했던 광주 최초의 체육관 건물로, 녹색은 ‘평화’를 별은 ‘희망’이라는 뜻의 에스페란토어이다. 19세 때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복역 후 강인한 체력에서 민족의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일념으로 체육관을 운영했으나, 일제는 사범자격증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탄압을 하자 일본인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6개월 만에 단증을 따고 사직공원 입구에 녹성상회를 만들어 전면에는 고무신 파는 점포로 위장하고 마당에서 유도, 역도, 레슬링 등의 체육관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1923년 광주청년회 주도로 보급된 물산장려운동의 영향을 받아 조선상품인 ‘거북선표 고무신’ 만을 팔았다.

신사가 있는 광주공원 옆에 체육관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에 의해 폐쇄되고, YMCA로 체육관을 옮긴 김후옥은 광주 최초의 소년척후단(보이스카웃)을 만들었다.

현재 건물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지만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하나 둘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이때 언제까지 지금의 상태로라도 보존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더 이상 훼손되기 전 보존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진사 여섯 배출한 한진사댁

사직동에는 진사 여섯을 배출했지만 선대의 유지로 관직에 나가지 않고, 백의공경했던 한진사댁도 이야기로만 남아있다.

자손들이 당파 싸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한대기 성균관진사는 ‘진사는 하되 절대 벼슬에 오르지 말라’는 유지를 남겨 한 집안에서 진사가 여섯 명이 나왔지만 대과를 보지 않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

가문을 일으키기도, 명성을 더럽히지 않는 것도 어렵다고 하는데 300여 년간 조상의 유지를 지킨 그 절조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한진사댁은 자식들이 결혼해도 분가시키지 않고 한 집에서 살게 하면서 부모에 효를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도록 해 쌍효자(필오와 필용) 정려가 내려졌다. 사동 일원에는 한진사댁의 기와집 여러 채가 있었으나 1970년대에 손들이 300여년의 사직골 터전을 정리해 지금은 옛 집의 구조를 다소 어림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청주한씨 쌍효비각은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 뒤 선산 앞에 있었는데 개발에 의해 아파트단지가 돼 다른 곳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