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 사직동'] (10) 사직공원의 추억 사직동물원…7080 광주·전남 대표 위락시설

2017년 07월 12일(수) 19:20

토지를 관장하는 국토 신(社)과 백성을 먹여 살리는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인 사직단은 1971년 동물원과 야외 수영장이 만들어지면서 헐리게 된다. 이후 1991년 사직공원 동물원이 우치동으로 이전하면서 1993년 사직단이 복원되고, 이듬해부터 1994년 사직제가 다시 이뤄졌다.

사직공원의 원래 이름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기념공원’이었다. 1924년 일본 왕태자 히로히토(뒤에 소화 천왕)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1913년 먼저 조성된 광주공원과 비교해 광주공원을 구 공원, 그리고 기념공원을 신 공원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기념공원은 해방 후 사직공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태조 3년(1394)에 건립된 사직단 때문이었다.

노성태 ▲빛고을역사모임 회장(1998-2011) ▲한국 근·현대사 검정도서 검정위원(2002-2004, 교육인적자원부) ▲역사교과서 보조교재 개발 집필위원(2016-현재)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공동대표

원래 사직단은 토지를 관장하는 국토 신(社)과 백성을 먹여 살리는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을 말한다. 서울사직단(국사단은 동쪽, 국직단은 서쪽)과 달리, 광주사직단은 관청 서쪽에 사·직의 단을 함께하고 석주와 배위 없이 지금의 사직공원 자리에 세웠다.

토지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므로 삼국시대부터 사직단을 설치해 왕이 친히 나아가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으며, 광주에서는 목사가 왕을 대신하는 제주가 됐다. 이 때문에 역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종묘와 함께 ‘종묘사직’은 왕조 그 자체를 의미했다.

1908년 일제가 사직제중지령을 내리면서 사직제는 폐지됐지만 사직단은 1960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사직동물원이 들어선 1960년대 말 헐리고 만다. 오늘 사직단은 1991년 동물원이 우치공원으로 옮겨지자, 예전 동물원 입구 매표소가 있던 자리에 1993년 사직단이 복원되고, 이듬해인 1994년 사직제가 행해진다. 100년만의 부활이었다.

사직동물원·야외수영장 인기몰이

1970-80년대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은 자의든 타이든 한번 정도는 찾았던 곳이 사직공원이다.

오늘처럼 마땅한 오락시설이 없던 당시에 초등학생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였고, 심지어는 수학여행 코스이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는 산책하면서 연애도 하는 일석이조 데이트 코스였다.

광주와 전라도 집집마다 어린이들이 아빠 엄마를 붙잡고 사직동물원에 놀러 가자며 노래를 불렀다. 특히 어린이날이면 몰려든 인파로 동물원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70-1980년대 사직공원에 사람들로 북적될 수 있었던 것은 1971년 사직단을 헐고 만든 동물원과 야외 수영장 때문이었다.

현재 복원된 사직단 장소가 예전 동물원 입구 매표소였다. 동물원은 개장 당시 22종 51마리의 동물과 함께 출발했다. 그러나 해가 가면서 식구가 늘어났고, 80년대에는 80여종 300여마리로 늘어난다.

사직공원 동물원은 1970-80년대 광주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명소였다. 1971년 사직공원 동물원 개원식(왼쪽). 사직공원 풀장 개장식. /사진출처 구글

야외 수영장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수영장도 있었고 다이빙대, 미끄럼틀 등의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당시 사진으로 보는 수영장과 수영복이 참 재미있다. 개장 당시 수영장 입장료는 어른 200원, 어린이 150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어느 정도인지 얼른 계산이 안 된다.

사직공원에 동물원과 야외 수영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람차와 회전목마 같은 몇 개의 조촐한 놀이기구도 꽤 인기가 있었다.

관람차를 타면 광주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연인들은 회전목마를 타면서 사랑을 키웠다. 이처럼 1970-1980년대 당시 사직공원은 ‘공원’ 보다는 동물원과 수영장, 놀이시설이 갖춰진 유원지였다. 그리고 광주 시내와 가까운 거리여서 찾기도 쉬웠다.

당시 사직동물원과 관련된 재미나는 기사가 많다. 몇 가지 기사만을 간추려본다.

당시 사직동물원의 마스코트는 호랑이였다. 특히 호랑이 부부의 다산은 사직동물원의 자랑거리였다. 1980년 2월8일 동아일보는 사직공원에서 세 마리의 새끼 호랑이가 태어난 기사를 실으면서 부부 호랑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개장과 함께 들어 온 1970년, 1971년생인 벵골산 호랑이 부부는 2년 만인 1973년 세 마리의 새끼를 낳은 뒤 7회에 걸쳐 총 24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당시 24마리 출산은 동양 신기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호랑이 부부의 다산은 사직동물원의 자랑이었다. 광주를 연고로 탄생한 해태 타이거즈(현재 기아 타이거즈)의 마스코트가 호랑이가 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사직동물원의 애환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마냥 늘어나는 동물원 식구들은 축복을 받았던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80여종 300여마리로 불어나자 동물원의 우리를 더 이상 늘린 공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다른 동물원으로 분양 보내야 했고, 나중에는 사자 부부의 발정기 동안 강제로 둘을 별거시키는 ‘동물 가족계획’이 실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78년 12월27일자 경향신문은 충격스런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생후 8개월 된 호랑이 새끼 2마리를 전기 쇼크로 죽인 후 민간인에게 박제용으로 팔아넘겼다는 기사였다.

1991년 이전한 우치공원의 동물원 면적이 46만㎡였던 반면 사직동물원은 1만9천㎡에 불과했다.

당시 사직동물원이 얼마나 협소한 공간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공간의 협소, 이는 사직동물원 개관 당시 코끼리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을 위해 코끼리를 사 주겠다는 후원자가 있었지만 동물원 측에서 거절한다. 아무튼 특별한 볼거리가 없던 1970-1980년대 사직동물원은 호남 지역 최고의 위락시설이었다.

1991년, 동물원이 우치로 이전하면서 사직공원 시대를 마감한다.

옮겨지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늘어나는 식구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장소의 협소성이었지만, 동물들의 울음소리로 인한 소음과 냄새로 인한 모기나 파리 떼의 습격 등 주민들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동물원 건설을 이유로 헐려진 사직단은 두고두고 시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조상들이 신성시하던 장소에 불경스럽게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하고 동물원을 설치해 민족혼을 말살시킨 것과 진배없다며 마뜩찮게 보는 시선도 점점 커져갔다. 1993년, 사직동물원이 우치로 옮겨지자마자 곧바로 사직단이 복원된 이유이기도 했다.

사직동물원이 우치로 옮겨지기 전인 1986년 야외 수영장도 폐쇄됐고, 회전목마 등 놀이시설을 갖춘 놀이공원도 노후화돼 철거된다. 이후 사직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에게 잊혀진 공원이 됐고, 1970-1980년대 북적되던 사직공원의 전설은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