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 광산구청장의 특별한 실험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7월 12일(수) 20:21

문재인정부 들어서 지방분권이 화두다.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지방분권을 채택하고 이를 헌법에 넣기 위해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23년 현주소가 너무 비참해서,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이양된다한들 감당할 능력이 있기나 한지 걱정스럽다. 지방은 지금, 아무리 지방자치를 해도 자치도·자립도·자조도 엉망이다. 지방 주민으로서 최소한의 자긍심이나 자존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이란 변방의 사막에서 중앙에 대한 피해의식·비굴함·열등감·모멸감·적개심만 가득하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중앙의 식민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방자치는 ‘주민이 주인’이 되고, ‘주민이 행복한 생활자치’여야 한다. 지방자치 역사는 23년이나 됐지만 진정으로 주민 스스로 문화ㆍ복지ㆍ환경 등 삶의 질 개선과 지역발전을 이끌어가는 생활자치를 통해 ‘중앙의 식민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지역이 몇곳이나 될까 싶다.

광주와 전남은 광역자치단체 2곳, 기초자치단체 27곳에서 4년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아왔다. 그러나 어떤 지방의원, 어떤 지자체장이 잘했는지 어떤 곳이 못했는지, 객관적인 성적표가 없다. 주민의 여론, 각종 수상실적, 정부의 행정평가 등으로는 진정 그 지역 실정에 맞는 지방자치를 실현했는지 가늠해보기 어렵다.

최근에 필자는 광주 광산구청을 눈여겨보고 있다. 광산구 민형배청장의 경우 다른 기초지자체가 배우러 올 정도로 노동·교육·행정 분야에 상당한 혁신을 이룬 자치단체로 꼽힌다. 대표적인게 주민참여예산제와 주민회의 도입, 동장 주민추천제다. 주민들이 정책을 기획·집행·평가하고 마을 의제를 직접 논의·결정하는 과정이 신선하다. 전국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광주전남 최초로 공공부문 생활임금제를 시행한 것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마을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공직 역량을 집중하고, 전국 최초 청소노동자 협동조합인 ‘클린광산’ 설립을 도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1위로 광산구를 선정할 정도다.

특히 광산구 우산동과 도산동 동장은 청장이 임명하지 않고 주민이 직접 뽑고 있다. 동장 주민추천제는 각 동마다 200여명이 주민 투표인단으로 참가해 지역단체와 주민을 대상으로 공개 모집을 한다. 동장 후보로 나선 공직자들은 공약과 동 운영계획을 각자 발표하고 주민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왜 자신이 동장으로 적합한지를 적극 설명해야 한다. 주민들은 후보 발표와 토론 등을 듣고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동장 후보 선출 선거는 새로운 형태의 주민자치 실험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실험이다.

또한, 인사에서의 주민참여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일자리도 만들고, 수익도 내면서 지역의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사회적경제자치를 실험한 광산구의 ‘더불어락 협동조합’과 ‘클린광산 협동조합’은 다른 지자체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더불어락협동조합은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결성한 광주1호 협동조합이다. 복지관에 북카페를 스스로 만들어낸 어르신들이 내친김에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팥죽가게,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일자리도 만들고, 수익금으로 이웃도 돕고 있다. 클린광산협동조합은 광산구의 생활쓰레기 수거를 대행하던 업체의 폐업신고로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전국 최초 사례다. 지금 이분들은 광산구의 청소대행을 맡으면서 기존보다 임금을 약 25% 정도 늘리면서도 근로환경 개선과 이웃돕기까지 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업 환경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삶의 질을 높이면서, 고용과 수익창출 그리고 지역사회 현안 해결이라는 일석사조 효과를 지역에서부터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오랜 세월 중앙집중화한 정치시스템이 주민의 자치력 본능을 퇴화시킨 상황에서 광산구의 사례는 누군가 마중물을 부으면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최근에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방분권과 지방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선정·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행정자치부는 국정기획위에 지방분권 실현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역발전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통합한 ‘지방분권·균형발전위원회’를 연내 설립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아울러 새 위원회에는 연예산 10조원에 달하는 지역발전특별회계에 대한 조정권한을 부여해 실질적인 권한 강화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전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지방분권 강화 및 균형발전’ 공약을 강조한 바 있다. 공약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지방재정분권 실현 ▲주민참여확대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혁신은 위와 아래가 맞장구쳐야 빨라진다. 정부가 분권과 지방균형발전을 모색하는 동안 자치현장도 변화로 성과를 만들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정부로 더 많이 옮기고, 시민들이 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강구하려면 23살이나 된 지방자치와 지방자치단체장이 빨리 달라져야 한다. 스스로 권력과 돈을 지방에 분산해 줬을 때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점검해봐야 한다.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 공무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이다. 지난 7년 동안 민형배 광산구청장이 한 지방자치 방향은 ‘지방이 진정 잘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학교’가 되고, 자치행정이 ‘마을자치공화국’이 되려면, 지자체장의 자치역량이 그 질을 결정한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