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근대적 인간, 매국의 길에 서다 ‘이완용 평전’ 김윤희 지음 한겨레출판 1만6천원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2017년 07월 23일(일) 19:10

‘이완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원흉, 을사오적 중 한명이라고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대한제국의 쇠락이 단순히 매국노 몇 사람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당시 외교적 난맥상, 국가 재정의 문제, 극심한 부정부패, 통치자였던 고종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완용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해서는 단죄를 해야 한다. 다만, 그런 행동의 이면에 대한 삶의 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역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완용이 살았던 시대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국가 간 전쟁과 약소국은 강대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약육강식의 시기였다.

명망가 집안의 양자로 들어간 이완용은 어릴 때부터 명석한 두뇌로 두각을 드러내고 25세 때 문과에 급제한다. 29세 때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학생으로 입학해 서양학문과 영어를 배운다. 그는 조선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촉망받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급변하고 있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실패는 청나라의 간섭을 강화시켰다. 고종은 자주외교를 펼치고자 1887년 8월 심상학을 주일공사, 박정양을 주미공사로 파견을 결정한다. 하지만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세 가지 약속인 삼단(三端)을 조선 정부에 요청한다. 조선공사는 청국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한다. 외교 모임에 참석할 때도 청국공사의 뒤를 따라야 한다. 중대한 외교 문제를 교섭할 때도 청국공사와 협의하며 지도를 받아야 한다. 굴욕적인 요구사항이었지만 조선정부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때 이완용은 박정양을 따라서 미국에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다. 이완용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비애를 느끼고 조선의 정치체계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이완용은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될 때까지 특별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아관파천을 계기로 활동이 두드러진다. 독립신문 창간을 지원하고 독립문 정초식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연설을 했다. 미국처럼 독립해 부강한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1898년 만민공동회가 탄압받고 독립협회가 해산됐다. 1899년 대한제국은 국제(國制) 선포 후 황제권을 표방하는 권력 구조가 성립됐다. 이완용은 2년 반 동안 관찰사로 지내면서 탐학의 죄를 쓰고 법부의 조사와 재판을 받는 치욕을 겪은 채 관직 생활을 접어야 했다.

1904년 2월 일본군이 인천에 정박한 러시아 함대를 침몰시키고 서울을 점령한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다.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에 패배한 러시아가 합의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보호권이 인정됐다.

1905년 11월17일, 소위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 을사조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최고결정권자인 고종의 공식적인 결정이 없는 일본의 강압에 의한 체결이었다. 이완용이 본격적인 친일파로 돌아선 것이 이때라고 보고 있다. 같은 해 12월8일 이완용은 자신의 변명과 을사조약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데 대한제국이 부강해지면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설명과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1907년 내각 총리대신이 된 이완용은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성신문 역시 “한국이 부강을 인할 시”에 보호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을 들어, 일본의 보호 아래 정부를 개혁하고 실력을 양성해 대한제국이 독립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대한제국을 어떻게 처리할지 세 가지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첫째는 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침략하는 것. 둘째는 대한제국을 완전한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 셋째는 평화적으로 합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909년 7월 ‘한국 병합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1910년 8월22일 이완용은 순종을 알현하고 한일병합조약에 대한 전권 위임장을 받고 통감부로 가서 데라우치와 회견하고 조약에 조인했다. 사실상 대한제국의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이왕직(李王職)에서 근무했던 ‘곤도 시로스케’는 이완용에 대해 학식, 시문, 글씨가 뛰어나지만 정치적 지조가 부족한 정치가라고 평하고 있다. 그의 행적에도 알 수 있듯이 현실적 세력을 쫓아서 친미, 친러, 결국에는 일본의 앞잡이가 돼 나라를 바치는 매국노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림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도시·지역개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