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원형의 보고 '광주 사직동'] (12) 광주천 이야기 광주의 생명수이자 종합 운동장 ‘광주천’

2017년 07월 26일(수) 19:20

일본인이 1917년에 지은 ‘광주지방사정’에 실린 광주교 사진.

물이 있어야 마을이 들어선다. 마르지 않는 냇물이 흐르면 먹고 농사지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넓은 강이 있으면 배를 띄울 수 있어 더더욱 좋다. 이렇듯이, 도시에는 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물은 도시의 역사를 만든다. 광주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에도 내(川)가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지금 광주천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을까? 15세기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건천(巾川)이란 내가 보인다. “본현의 남쪽 5리에 있다. 무등산 서쪽 산록에서 나와 서북으로 흘러 칠천으로 들어간다”고 적혀 있다. 광주천을 건천(巾川)이라고 불렀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도 건천으로 기재돼 있다. 무등산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건천은 ‘무등산지건천’(無等山之巾川)이라고 했다. 건천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내내 불려졌다. 1924년 광주 유림들에 의해 한문으로 집필된 ‘광주읍지’에도 마찬가지였다.

김덕진 광주교육대 교수

조탄(棗灘)·조계(棗溪)로도 불려

또 다른 이름도 있었다. 일본인이 1917년에 지은 ‘광주지방사정’이라는 책의 ‘위치 및 지세’ 편을 보면, “광주시내의 서쪽을 흐르는 작은 내는 조탄(棗灘)이라고 부르고(세상에서 光州川이라고 한다) 수원은 무등산에서 발원한다”고 적혀 있다. 지금 우리가 광주천이라고 부르는 내가 조탄(棗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탄은 조계(棗溪)라고도 불렸다. 둘 다 같은 뜻이다. 양림동에서 태어나서 16세기에 4조 참판과 8도 감사를 역임한 광주 정씨 정만종(鄭萬鍾)의 호가 조계(棗溪)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산천을 호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만종의 호 조계는 지금의 광주천이었음에 분명해 보인다.

서울 출신이지만 광주 출신 이중호 문하에서 공부한 16세기 사람 이순인(李純仁)이 지은 ‘棗灘卽事’란 시를 보면, 조탄의 정취가 잘 묘사돼 있다. “棗下暄沙碧蘸川, 鞦韆雙暎大堤邊, 馬前歌鼓喧如市, 紅燭羅星月掛天”이라고 읊었다. 가는 모래밭에 맑은 물이 흘렀다. 큰 둑가에서 그네 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모습이 맑은 물에 비쳤다. 그 모래밭에 보름달 뜨면 씨름판이 벌어졌고, 시장이 열렸고 그 장터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고지도에 광주천이 건천으로 표기돼 있다. 건천은 혈포에서 칠천과 합류해 흘러 내려간다.

조탄은 굉탄(轟灘)으로도 기록됐다. ‘조(棗)’를 ‘굉(轟)’으로 잘못 적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금계(錦溪)라고도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름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경양방죽 농업용수로 사용

사람들은 농사용 물을 확보하기 위해 이 조탄에 보(洑)를 막았다. 보란 낮은 물막이 둑이다. 둑에 고인 물을 옆으로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탄에 건립된 보를 조탄보(棗灘洑)라고 했다. 읍지에 “주의 남쪽 2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의 서남대 부속병원(옛 적십자병원) 앞에 있었음에 분명하다.

일제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양방죽을 축조한 김방(金昉)이라는 사람이 조탄보에서 경양방죽에 이르는 수로를 개설했다. 그 때 하늘에서 눈이 내렸는데 조탄보에서 경양방죽에 이르는 길의 눈이 녹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서 수로를 설치했다고 한다. 수로는 지금의 호남동 성당과 대인동 사거리를 거쳐 경양방죽으로 연결됐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에 조탄보에서 봇도랑을 통해 물을 끌어다 경양방죽에 모아뒀다가, 봄과 여름 두 계절에 경양방죽 아래 논에 공급했다. 공급지는 지금의 광주역 부근이었다. 보 관리를 위해 이용자들은 ‘조탄보계(棗灘洑契)’라는 계를 만들어 운용했다. 계원은 조탄보와 경양방죽 물 이용자 25명 정도였다. 경양방죽 물 사용자들은 가을에 조탄보 수리를 맡았다. 반면에 봄에는 조탄보 물 이용자가 보 수리를 맡았는데, 이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보작촌(洑作村, 현재 황금동 일대)이었다. 물 이용자가 보 수리를 맡았던 것이다. 보감(洑監)이나 보계장(洑契長) 같은 간부를 뒀고, 계원마다 일정액의 계돈을 냈다.

구불구불한 천을 직선으로 만들고 천변을 매립해 폭을 크게 줄인 지금의 광주천. /광주매일신문 DB

광주천으로 이름이 바뀌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공식 명칭은 조탄이었지만 세칭 광주천이라고도 했다. 광주천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광주 시내에 있는 천이라는 뜻에서 나온 일반명사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는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제는 광주 시내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성내의 북내리, 남내리 등을 1913년에 북문통, 남문통 등으로 불렸다. 성외의 마을을 수기옥정, 화원정 등으로 바꿨다.

바로 이때에 조탄도 광주천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로부터 3년 뒤, 1916년에 조선총독부는 관부를 통해 이름을 ‘광주천’으로 지정해버렸다. 1924년도 조선총독부 관보를 보면, ‘光州川 河川敷地’의 점용을 광주면에 허가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행정명칭으로 광주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조탄은 희미해지고, 광주천만 남아가고 있었다. 1931년에 일본인이 발간한 ‘광주요람’을 보면, “무등산에서 발원하는 광주천(光州川)은 시가의 서쪽을 관류해 서북쪽으로 달린다”고 기록돼 있다. 이제 공문서와 사문서 및 대화 가릴 것 없이 광주천이 공식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노지다리서 철제 콘크리트 광주교로

냇물을 건너려면 다리가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어떤 다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벌교 홍교 같은 튼튼한 다리가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진천 농다리 같은 다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징검다리나 흙다리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광주에 이른바 ‘근대식’ 다리가 생긴 것은 1907년이다. 최초의 근대식 교량은 ‘광주교’이다.

광주공원 앞에 있다 해 ‘공원다리’란 별칭을 가진 다리다. 이 다리는 목포-광주-서울로 이어지는 현 국도1호선의 전신인 신작로(1등도로) 개설의 부산물이다. 1917년 일본인 저술에 사진이 실려 있는데, 길이는 100m 정도이고, 난간은 없지만 우마가 교행할 수 있는 폭이었다.

일제는 광주천을 크게 손댔다. 천변을 매립해 폭을 크게 줄였다. 구불구불한 천을 직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 장터가 없어져 지금의 양동시장이 탄생하게 됐고, 광주교도 철제로 개축되면서 길이가 60m로 짧아졌다(조광철, ‘광주천의 다리’).

이후 금교, 부동교 등이 건설돼 일제 강점기 때에만 광주천에 8개의 다리가 있었다. 해방 이후 광주 도심이 확장되면서 다리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 이름이 있고 각자 얽힌 사연도 있지만, 너무 많다보니 이름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