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 파리의 여름 축제 시민 일상으로 들어온 한여름 밤 페스티벌

2017년 08월 03일(목) 19:00

파리 플라쥬에서 휴식과 놀이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여름의 한복판에 있는 파리는 시민보다 관광객이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럽인들이 그렇듯, 파리 시민들도 여름 바캉스 시기엔 많은 이들이 다른 도시로 오랜 기간 떠난다. 물론 바캉스를 떠나지 않은 이들도 많이 있다. 바캉스를 갈 경제적 여력이 없는 이들부터 피치 못해 못가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들로 남아 있는 시민을 위해 파리시는 이들을 위한 여름을 준비한다. 바로 다양한 여름 축제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 라빌레뜨 야외 영화 축제

매년 여름 약 한달 가량 라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밤마다 영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7월20일부터 8월20일까지 ‘부엌 안에서’(Dans la cuisine)라는 테마로 27번째 영화 축제가 무료로 열리고 있다. 음식과 관련한 프랑스 영화, 해외의 컬트 영화 및 독립 영화들이 상영 대상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따뚜이(RATATOUILLE), 일본 라멘 가게를 배경으로 한 음식 영화 담뽀뽀(TAMPOPO)도 상영된다. 특히 올해는 영화 축제 기간 중 타계한 ‘누벨바그의 여신’, 잔느 모로(Jeanne Moreau)를 기리는 행사도 있다.

밤하늘에 수놓인 별을 지붕 삼고 우르크 운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잔디에 누워, 무료로 펼쳐지는 상영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라빌레뜨 공원은 피서를 떠나지 못한 연인이나 가족들이 담요, 간식거리, 의자 등을 가지고 와서 쉴 수 있는 훌륭한 피크닉 장소가 된다.

라빌레뜨 공원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시민들. /https://lavillette.com/evenement/cinema-en-plein-air-2017

라빌레뜨 영화 축제는 해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선정하며, 가끔씩 특별한 행사를 함께 개최하기도 한다. 작년엔 해당 영화 속 직업을 상징하는 드레스코드를 정해, 영화를 보러오는 이들은 영화 등장 인물들의 직업을 상징하는 의상인 군복, 히어로, 우주비행사, 경찰, 의사의 가운 등을 입고 참가하기도 했다.

▶ 운하의 여름

라빌레뜨 공원을 방문하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많다.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면, 도심 내 피서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라빌레뜨 공원을 가로 지르는 우르크 운하에서 ‘운하의 여름’이라는 축제가 올해로 10번째 열린다. 올해는 7월8일부터 8월27일까지 1-2유로(토·일요일 요금)로 셔틀 보트를 즐길 수 있고, 파리의 운하를 쿠르즈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댄스, 콘서트, 스트리트 아트도 함께 기획돼 있다.

▶ 파리 플라쥬 축제

파리시는 해마다 세느강변을 따라 인공적인 해변가를 조성해 다양한 행사와 휴식 장소를 제공한다. 7월 8일부터 9월 3일까지 이용 가능하다. 본래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서 시작됐으나 이젠 어느덧 한여름의 파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도 함께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는 관광 장소가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리의 여름이 생각보다 덥지 않아 오히려 더위를 기다릴 때가 많다. 작년엔 뒤늦게 찾아온 한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찾아온 더위를 반가워하며 세느강변 산책길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라빌레뜨 공원을 가로지르는 우르크 운하. /https://www.tourisme93.com/ete-du-canal/

퐁 데 자르(pont des arts) 다리와 Sully 다리 사이에 집중 조성된 해변가에는 선베드, 파라솔, 카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간이 전시, 체스 등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마련돼 있다.

▶ 일회성 이벤트에 머문 한국의 축제들

필자는 본지에 일 년 전, 매년 6월 개최되는 프랑스 음악축제에 대해 기고한 적이 있다. 이번엔 프랑스의 도시 공간과 시민의 삶과 일체화된 축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축제란?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움과 일탈의 기호다. 또 축제란 시공간적으로 파편화됐던 인간의 지친 삶 속에서 벗어나 타인과 세계를 마주하고 탈일상성을 꿈꾸며 즐거운 체험이 이뤄지는 통합의 장이다. 프로이트는 ‘일상에서 억압됐던 개인의 욕망과 일탈 충동이 해소되는 장’으로서 축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신학자 하비 콕스는 ‘축제는 일상과 비일상, 이성과 욕망이 만나 개인과 공동체가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봤다.

파리 플라쥬에서 휴식과 놀이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전통사회에서 축제는 파격적인 탈일상성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계급과 성별, 편견 등 사회적 장치에서 벗어나 광적인 욕망의 발산과 기존 사회질서의 전복을 통해 환상을 꿈꾸는 장이었다. 더불어 집단 엑스터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장이었다. 이때 관람자와 축제 주체자의 구별 없이 함께 즐기는 장이 된다. 현대 축제는 지방 분권화가 자리잡게 되면서, 지역의 특성과 결부돼 경제적인 가치에 집중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현대축제는 갈수록 양적으로 성장하고 문화산업적 측면이 강조됨에 따라 질적인 측면은 약화되고 축제의 본질은 굴절됐으며, 점차 스펙타클화 되면서 관람자와 주체가 명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축제의 스펙터클화 현상은 축제가 소비되는 대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시민은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전락해버린다. 이는 축제를 일회성의 이벤트로 전락시키며, 참여형보다는 관람형으로 바꿔버렸다. 일상의 탈출을 시도하는 축제의 본질은 거세되고 구경하는 관람객만 남게 되는 축제의 모습이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 탈일탈성을 꿈꾸는 축제, 다시 일상으로

한여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뤄진 파리의 축제들을 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첫째, 축제의 기간이 매우 길다. 한국의 축제가 단 며칠 동안만 이뤄지는 것에 반해, 한 달에서 두 달 동안 열리는 축제가 많다. 때문에 축제가 이벤트처럼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들의 삶 속에 더욱 깊게, 그리고 더 친밀하게 기억돼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번 주에 즐기지 못했어도 다음 주에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이 쉽다.

둘째, 축제가 상품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가치와 이윤에 집중하며, 축제를 상품화하려는 시도는 결국 축제의 스펙터클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축제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프랑스의 참여형 위주의 축제의 경우 상품을 판매하는 기념품샵이나 음식점들은 엄격히 시의 규제하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축제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주며, 관람객이 아닌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을 발견 할 수 있다.

셋째, 축제는 시민들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의 빈 공간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준다. 탈일상성을 꿈꾸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우리는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가? 한여름 파리시에서 준비한 축제들을 보면, 본래 취지는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휴식 공간이라는 점이다. 관광상품이 아닌 시민들의 삶의 질에 더욱 집중한다. 그래서 축제는 더 이상 경제적 가치와 이윤을 추구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민과 도시 공간, 시민과 문화, 문화와 도시 등 각각의 개체들의 빈 곳을 연결해주는 실핏줄과 같이 일상적 삶의 힘이 됐다. 탈일상성, 일탈을 꿈꾸는 축제는 먼 곳이 아닌 시민의 일상에서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공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이제 축제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곁에 늘 있는 탈출구여야 한다.

▶ 사람 냄새 나는 亞문화전당 축제를 기대하며

얼마 전 아시아문화전당을 찾았다. 광장에는 여러 개의 파라솔과 함께 앉아서 쉴 수 있는 오브제들이 마련돼 있는 것을 봤다. 가족들이 한가로운 한여름 오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당의 광장은 비어있어 보인다. 시끌벅쩍함이 없다. 여러 전시공간은 관람객을 기다리고만 있다. 빈 공간은 채움을 기다리고 있기에 의미 있는 공간이다. 사람의 활동이 중첩되지 않은 채 비어있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하루 이틀만의 행사로 채워지는 이벤트의 광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는 매우 역동적인 장소가 될 수 있음에도, 전당의 광장은 정지돼 있는 한 폭의 그림만 같아 더욱 안타깝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아시아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듯이 우리의 ‘주변’과 ‘소외’를 문화의 중심으로 견인하기 위한 확장된 콘텐츠를 광장 밖으로 가지고 나와 시민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 도시의 비어있는 잉여 공간을 시민에게 제공하고 함께 향유하는 사람이 있는, 날마다 축제가 있는 그러한 광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좀 더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