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조루 그 아름다움! 타인능해! 배동진 |
| 2017년 08월 06일(일) 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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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는 국가가 중요민속자료(제8호)로 지정한 99칸 집으로 원래 누마루가 살림하는 집이름이 된 것으로 외부인이 운조루를 탐방하려면 주인에게 입장 수수료 1천원을 내야 한다. 인근의 ‘곡전재’는 1926년에 지은 집으로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입장 수수료는 없다.
집, 관청, 성황당, 절, 암자, 성당, 교회든 어느 집이든 명소라고 하는 건축물은 명소가 지닌 품격과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된 건축물이라도 명소에 부응하는 품격과 문화가 없으면 향기나 가치가 없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필자는 한국의 살림집을 비롯한 언어, 살림살이, 뜸, 침 등 전통 치료법, 놀이문화, 노래, 그림 등 예술,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우리 조상들이 오천 년 이상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서 살아온 것은 우주의 기와 사람의 기운이 서로 상통하기 때문이고, 우리 풍토에 가장 적합하고, 흙과 나무, 짚 등 건축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값진 유산인 것이다.
이런 살림집이 근대화이후 서양문물의 무분별한 도입과 외국문화 선호, 식민지 시대는 ‘열등감과 자기비하의 덫’, 새마을운동 시기이후 살림집을 무조건 때려 부수고 시멘트 가옥이나 시멘트 범벅인 공동주택을 짓는 무지의 소치로 흙과 나무로 지은 전통적인 살림집은 대부분 사라졌고,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구례 운조루, 곡전재는 전통가옥으로 살림집 면모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집 앞의 연못(운조루), 담쟁이 넝쿨과 호박돌이 아름다운 담장(곡전재), 마당가의 수국(곡전재), 위성류(운조루)가 있어 아기자기한 정원, 여자들의 공간인 우물정 형태의 안집(운조루), 사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운조루), 용마루와 지리산 능선이 잘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필자는 운조루를 가끔 찾는 편인 데, 아름다운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부엌공간과 낮은 굴뚝인 데 사랑채 부엌에는 통나무로 만든 쌀 뒤주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집인들 쌀 뒤주가 없으랴만 이 곳의 뒤주는 특별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운조루 사랑채 부엌의 뒤주는 큰 나무를 잘라 끌로 파서 만든 원통형 통나무 뒤주로, 쌀 두가마하고도 반 즉, 200kg이나 들어가는 분량의 크기이다. 뒤주 아래쪽에는 ‘他人能解’라고 쓰여 있는 직사각형태의 조그마한 판대기가 있고, 손가락 1개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다.
‘타인능해!’ 아래쪽의 판대기는 누구나 손가락을 넣어 뚜껑을 열고 쌀을 꺼내 갈 수 있다. 주인이 아닌 타인(남)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즉, 누구나 밥 지을 쌀이 모자라면 운조루에 와서 필요한 만큼 쌀을 꺼내 가져 가도록 쌀 곳간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란…
어디 이뿐인가. 운조루의 굴뚝은 섬돌아래에 있다. 굴뚝은 높아야 연기가 잘 빠져 나가는 데, 이 곳 굴뚝은 섬돌아래에 있어 연기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이 부자집에서 밥짓는 연기를 보고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오래된 집의 겉모습만 구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집에 담겨 있는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탐방이 아닐까.
남에게 인정을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이 누대로 이어 왔기에 대저택인 운조루는 조선말기 사회혼란, 일제 탄압, 좌우익 혼란 시기, 6·25 한국전쟁 때에도 시기나 질투로 인해 불태워지지 않고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쌀을 자급하는 데 곡물자급율은 23.8%(‘15년)에 불과하다. 쌀을 자급하는 데도 WTO, FTA 협약에 따라 해마다 쌀 41만톤을 수입하는 실정이며, 더더구나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요즈음 쌀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요즘 한국사회는 독신 증가, 1명 가족, 비혼증가, 이혼 증가, 독거노인 증가, 이기주의 등 사회변화에 따라 풋풋한 인정과 배려하는 마음도 엷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운조루의 쌀 뒤주 ‘타인능해’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함과 넉넉하게 베푸는 마음 그리고, 낮은 굴뚝처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되살릴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사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