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고통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8월 09일(수) 18:58

요즘, 필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30여년 언론계 몸담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반추해보고 있다. 대한민국 광주에서 격동의 20세기와 21세기를 기록했던 사람으로서 지난날의 기자생활이 회환과 반성, 자긍심과 보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요즘,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더워서 숨쉬기도 힘든 여름 한가운데서 우연히 ‘기자’가 나오는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박열’과 ‘택시운전사’

#영화 박열

영화 ‘박열’은 일제강점기때 청년 박열과 천황계 제국의 민중인 기네코후미코가 일본과 조선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을 그린 것이다. 조선인 6천여명을 학살하고도 박열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변명거리만 찾는 일본 지배권력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항변하는 박열. 이 사건에서 일본 천황을 상대로 천황제 국가권력의 모순과 식민지 침탈의 실상, 3·1운동 압살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당당하고 묻는 장면은 통쾌함을 넘어 전율감까지 느껴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는 박열에게 힘을 주고 이런 항변의 과정을 본국 조선에 기사로 전달한다. 기자의 역사적 기록은 의인을 90년 후에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동력이 된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제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피츠힌터를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는 개봉 5일만에 500만을 돌파했다. 올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갈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 운전사가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다.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살육당한 현장을 독일기자와 함께 체험하는 택시운전사는 진실을 알리려 죽기를 각오한 외국인기자를 돕게 된다.

그동안 5·18광주를 그린 연화 ‘오 꿈의 나라’ ‘꽃잎’ ‘화려한 휴가’ 등이 있었지만 ‘택시운전사’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우리나라 기자가 아닌 외신기자 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보여준 기자정신 때문이다.

故 위르겐 힌츠페터는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찮은 상황을 듣고 광주로 향했다. 기자의 신분을 숨긴 채 삼엄한 통제를 뚫고, 광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그의 필름은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전 세계에 방송됐다. 그의 노력은 국내의 삼엄한 언론통제 속에 알려지지 못했던 광주의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이후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故 위르겐 힌츠페터는 1997년 출간된 ‘5·18 특파원 리포트’를 통해 ‘나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며 취재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故 위르겐 힌츠페터는 생전에 가족들에게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는 뜻을 수차례 밝혔고 2016년 5월, 고인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 유품이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치됐다.

#5·18은 현재진행형

필자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청년시절에 봤던, 그러나 애써 잊고 싶었던 그 장면이 다시 나타나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이 몰아쳤다. 1980년대부터 기자의 삶을 살면서 헌츠페터같은 용감한 기자는 못되었으나,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과 호남의 자긍심회복, 역사를 조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관객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느끼는 민주주의에 대한 절박한 감정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광주사람들은 37년간 그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광주기자들은 그 눈물을 기록하고 있었다.

필자는 ‘택시운전사’를 통해 힌츠페터의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죄다 회사 걱정에 기사들을 자체 검열하고 진실을 지우는 데 급급했지만, 외국인인 그는 광주 소식을 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 깊숙이 접근해서 취재했고, 결과적으로 진실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만섭이라는 택시운전사의 자각에 의한 헌신적 도움과 힌츠페터의 직업의식에 의한 사명감이 어울려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역사는 영웅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소시민들의 의지의 총합이 곧 역사라는 사실, 그래서 이 영화는 울림이 크다.

요즘,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타지역 분들이 필자에게 전화해서 ‘정말 그 장면이 맞냐’고 물어온다. 다시 피눈물이 난다. 37년 동안 우리가 알린 진실을 의심했던 것인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 시급한 이유다. 아직까지도 가해자가 잘못을 정확하게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폭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일부 인터넷에선 누리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군의 공작에 의한 폭동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전직 대통령은 폭동이라고 자서전에 썼다.

어둠은 빛을 가릴 수 없다! 거짓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 그런 노래가 있다. 지금 광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외부에 알려준 힌츠 피터 기자를 통해 우리 모습을 보았다. 우리 국민은 그 영화를 통해 다시 광주를 보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 그것을 목숨 걸고 기록했던 사람의 힘이다.

두 영화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의 고통도 함께 나누는 시간이길~.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