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다페스트의 소녀가 광주에게 2019 광주 세계수영대회를 위한 제언 김보현 |
| 2017년 08월 09일(수)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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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7월 27일 자정 가까운 늦은 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공항에 도착했다. 2017 부다페스트 세계 수영대회 대회기 인수절차에 참여하기 위한 광주대표단 일원으로 먼 거리를 날아갔던 것이다. 어린 학생시절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통해 인상 깊게 각인 되었던 역사의 현장에 발을 디뎠다는 흥분이 밀려왔다. 1956년 스탈린주의 폭압통치와 외세에 저항해 봉기했던 부다페스트 시민들을 소련군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이 죽어갔다. 80년 5월의 비극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 부다페스트와 광주 두 도시의 동질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과장된 일이 아닐 것이다.
광주대표단 일행들도 이 점에 공감했고 체류기간 내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숱한 외세의 침공과 압제, 그 속에서 지속되었던 비극과 시련을 견디고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해 온 헝가리가 이 국제행사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EU국가 중 경제적 후진국에 속하는 헝가리가 수영대회에 막대한 예산과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점들이 중요 화두였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개최도시 결정 시점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그러나 대회기 인수를 마친 지금은 그간의 논란을 넘어 새로운 고민과 시민적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회참관을 통해 얻은 경험과 현장에서 가졌던 생각들을 중심으로 다음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논의를 제안해 본다.
첫째, 광주 수영대회는 광주시 홀로 치르는 대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함께 준비하는 대회여야 한다는 점이다. 2015년 러시아 카잔대회와 201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 모두 중앙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치밀한 기획 하에 대회가 진행되었다. 이번 부다페스트 대회 조직위원장은 헝가리 국토개발부 장관이 맡았다. 사실상 중앙정부 주관으로 대회가 치러 진 것이다. 대회의 성패여부가 지방정부를 넘어 국가 전체에 끼칠 영향이 크므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협력해 대회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기에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책임 있는 여야 정당들의 관심과 협력 또한 시급하다.
둘째, 부다페스트 대회를 통해 보았듯 세계수영대회는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 대회개최 전 과정에서 개최국가와 도시의 문화·예술·학문 역량의 모든 것이 세계인 앞에 펼쳐지는 장이라는 점이다. 이번 대회 개·폐막식 공연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물론, 헝가리가 간직해 온 역사·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대회는 유럽대륙 ‘인종의 섬’ 헝가리가 새롭게 세계와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헝가리는 산업과 관광의 진흥 뿐 아니라 민족통합과 자긍심 고양을 위해서 이번 수영대회를 체육행사를 넘어선 문화·예술의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했다.
셋째, 부다페스트의 현장경험을 중심으로 대회준비 전반에 대한 광주시의 치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표단이 나눈 대화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할 수 없는 일들을 무리해서 욕심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들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자.” 부다페스트만이 가진 조건들이 있기에 성공한 대목이 있었고 우리가 갖지 못한 장점들을 유럽대륙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는 광주만이 가진 장점들이 있고 광주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건들이 있다. 이러한 조건들에 대한 면밀한 타산과 이에 기반 한 냉정하고 현실적 대회준비가 필요하다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그것이 불필요한 비용확대와 개최효과 축소를 막기 위한 과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과 안드라시 거리는 광주의 5·18광장과 금남로를 닮아 있다. 경기장과 거리에서 마주했던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함성이 떠오른다. 동양에서 온 그들의 선조들이 숱한 역사적 고난에 굴복하지 않았듯 오랜 고통과 시련 속에서 부다페스트는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소녀가 광주에 말하고 있는 듯하다. ‘광주여 함께 일어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