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가려다가 넘어진다 이경숙 |
| 2017년 08월 20일(일) 19:52 |
|
상호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연습을 하지 않고 출전한 자가 자칫 외양만으로 판단해, 전혀 잘 달릴 것 같지 않은 어떤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속도를 내며 무리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결승점에 도달해야한다. 괜히 자존심 때문에 그들을 따라잡고 앞서가려고 스피드를 올렸다가는 골인 지점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오버페이스로 본인이 목표했던 시간 안에 골인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초보자들은 초반에 앞서가려다 기력을 너무 소진해 버려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중도에 포기도 했다. 굳이 앞서가려고 기를 쓰다 포기하느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주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이화여대의 금혼학칙으로 졸업하지 못했다가 이 학칙이 폐지되면서 5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어느 할머니의 인생 역정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박경희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작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손녀뻘 되는 대학생 앞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요즘 대학생들 보니까 취업이다 결혼이다 많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더라고요. 힘들 때는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80년 인생을 살아 보니까 일부러 기를 쓰고, 애쓰고 살지는 마세요. 자기가 꼭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느 단계에 가면 꼭 이뤄지더라고요. 토끼처럼 빨리 뛰어가도 정상에 갈 수 있고, 거북이처럼 가도 갈 수 가 있더라고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좀 더 천천히 두려워 말고 시작해 봐요. 나처럼 50년 만에 졸업장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많은 우리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지난 봄, 남편과 제주를 여행하다 보니 제주를 여행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선 제주의 수많은 관광명소들을 둘러보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인증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쏜살같이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이다. 아마도 제주에 처음 온 모양이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걸음의 속도부터 다르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경관을 만끽하며 즐기는 진정한 여행자다. 오히려 발걸음이 평소보다도 더 느려진다. 나와 남편도 벌써 몇 차례 제주를 방문한 터라 평소에 잘 가지 않았던 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곧게 뻗은 삼나무 숲길을 한가로이 거닐었다. 호젓한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고, 나뭇잎 사이로 언뜻 비치는 햇빛과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를 누볐다. 휴양림 안을 걷다가 어쩌다 자유롭게 노니는 사슴 한 쌍과 마주쳤다.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그 녀석과 눈싸움도 했다. 천연계 속에서 보낸 하루는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다. 사색에도 잠겨 보고, 느긋한 걸음을 걸으며 나눈 천연계와의 대화는 행복 그 자체였다.
이튿날에는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 우도(牛島)에서 하루를 보냈다. 파도치는 해안 도로를 따라 대여한 전동 오토바이를 타고 머물고 싶은 바닷가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부지런히 앞서가서 얻는 것도 있겠지만 오히려 앞서가려다 잃는 것도 있다. 천천히 뒤서 가다 잃는 것도 있겠지만 뒤서 가니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조기교육이다, 선행학습이다 자녀들을 학업 경쟁에 몰아넣고, 오히려 아이의 인성을 쌓고, 인격을 도야할 시기를 놓쳐 버려 뒤늦게 후회하는 부모들을 종종 본다. 젊은이들 가운데 이제 갓 운전면허를 따고 신호 대기에 멈춰 섰다가 한발 앞서 출발하려고 기를 쓰는 청년들을 본다.
모두가 앞서가려는 세상을 살면서 이들에게 뒤에 서서 관찰하는 힘,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힘을 길러 줘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내 인생을 쫓기듯 살아갈 것인가? 오늘날 많은 젊은이가 발등의 불을 꺼 가며 근시안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보다 이들이 좀 더 멀리 보고,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면 참 좋겠다.
2017년! 여름철 혹서기가 한창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무조건 앞서가려고만 하지 말고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좀 더 남을 존중하고 배려해서 보다 의미 있으며 진정으로 행복한 자기의 삶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