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
| 2017년 08월 23일(수)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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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생생하게 그려졌듯, 당시 광주 택시운전사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맞섰다. 그러나 이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80년 5월 이후 그들 가족 전체가 겪어야 했던 핍박과 고통이 컸던 탓에 자식들에게서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 택시운전사 출신 5·18유공자는 37년 만에 ‘아버지 존경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필자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던 필자의 아들도 5·18광주를 직접 몸으로 겪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엄마의 직업인 ‘기자’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다.
필자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37년간 5·18의 명예회복에 앞장섰던 수많은 ‘광주 기자군’에 속한다. 우리의 사명은 앞 세대, 몸으로 항거했던 5·18해직기자들의 뒤를 잇는 여정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용감한 독일기자 힌츠페터 외에도 한국기자 활동도 보인다. 특히 검열당해 하얀 백지로 발행했던 옛 전남매일신문이 등장한다. 항거의 표시로 그런 신문을 제작했던 기자들은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해직을 당했다. 영화에서 유해진이 “택시기사는 손님을 태워야 하고 신문기자는 기사를 써야 한다”라고 화두를 던지자 지방지 최기자는 기자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부장을 비롯해 신문사와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 5월, 광주의 언론, 한국의 언론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1980년 당시 신군부는 보안사를 중심으로 ‘언론반’을 구성해 계엄사령부 보도처의 신문 방송 라디오 잡지 등 모든 매체에 대한 보도검열을 시행해 100만 건 이상을 조종 감독했다. 신군부는 ‘K공작계획’으로 민주화 여론을 잠재우고 군부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언론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5월 17일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와 함께 보안사에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표하면서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조치를 내리면서 보도검열 위반 시 폐간 조치하겠다고 위협했다.
특히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집단사표를 쓰고 이를 약 2만 장 인쇄하여 금남로에서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1980년 5월 당시 광주를 외국에 알린 외신기자는 독일기자 힌츠페터 뿐 아니었다. 수많은 외국의 언론 및 기자들이 광주의 아픔과 함께했다.
1980년 5월25일 AFP 통신은 “광주의 인상은 약탈과 방화와 난동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란 대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라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프랑스 언론사 르 몽드 지의 기자 필립 퐁스는 1980년 5월 27일 아침의 광주는 죽음의 도시와 같았으며 그 때 당시 상황을 학살이라고 증언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홍콩 특파원인 마쓰나가 세이타로는 “광주항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진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이뤄진 것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지도자들 마음 속에 광주항쟁 정신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은 마르코스천안문 사건, 필리핀 정권의 붕괴와 중국 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AP 통신 기자인 샘 제임슨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1980년 광주의 3일간 군대 만행으로 빚은 희생보다 더 큰 것은 없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선 지의 서울 특파원인 블레들리 마틴 볼티모어는 “나는 지난 25년 동안의 기자 생활 중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중화인민공화국의 장칭 등 사인방 재판, 그리고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 암살 이후 폭동과 살인사건 등을 취재해 왔다. 그러나 나는 ‘광주’의 참상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나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한 마디로 나는 ‘광주’라고 대답한다.”라고 증언했다. 부끄러워 붓을 놓는 기자들의 항쟁을 이어 1980년 이후 37년 대한민국 수많은 기자들이 5·18의 진실규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5·18 관련 비밀문서를 추적 중인 탐사보도기자 팀 셔록은 미국비밀문서를 들여다보고 ‘잔혹한 진압은 전두환의 베트남전 경험 이다’는 주장을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돼 직업은 물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해직언론인에 대한 국가배상의 법적 근거를 골자로 한 ‘1980년 해직언론인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대상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보도할 수 없어 일주일간 신군부의 검열 거부, 정권이 탄압할 때 신문 방송 통신 제작 거부에 앞장서 강제해직된 언론인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힌츠페터 못지않게 고통을 겪은 1980년 해직기자에게도 큰 관심을 가질 때다. 필자는 늘 1980년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는 절규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살아남은 우리는, 그때 그 해직기자들을 ‘택시운전사’의 ‘힌츠페터’기자보다 더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ssnam48@kjdaily.co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