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나도 알아 동화 배다인

2017년 09월 04일(월) 19:33

“울지 마!”

오빠가 버럭 화를 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오빠가 화낸다고 무서워할 내가 아니다. 나는 더 큰소리로 울었다. 난 1학년이니까. 아직까지는 울어도 괜찮다. 엄마는 오빠한테 나를 울리지 말고 잘 보살피라고 항상 부탁한다.

“너 우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별로 배가 안 고픈 것 같은데.”

“아냐, 진짜 엄청 배고프단 말이야!”

“그럼, 빨리 울음 그쳐! 울면 더 배고프니까.”

오빠는 라면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오빠의 마음이 약해진 게 분명하다. 나는 속으로 ‘히히’하고 웃었다. 라면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오빠가 의자를 딛고 올라서야만 닿는다.

“아직 세 시 밖에 안 됐는데?”

오빠의 눈빛이 약하게 흔들렸다.

“오-빠-아앙 응?”

나는 작전을 바꿔 콧소리를 섞어가며 오빠를 졸랐다.

이런 때는 강하고 거칠게 말하는 것 보다는 오빠의 여린 마음을 자극하는 게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은 4시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 알았지?”

“알았어. 걱정 마!”

오빠가 내 마음을 알아주니 기분이 좋아 깡충깡충 뛰었다.

“또 뛴다. 너 자꾸 그러면…….”

“알았어, 알았어! 오빠 미안! 오빠, 오늘은 물을 많이 부어. 알았지?”

나는 오빠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라면을 끓이는 오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오빠가 긴장을 한 것 같다. 엄마가 수도 없이 주의를 줘서인지 오빠는 뜨거운 라면 냄비를 옮기면서 내가 데일까봐 엄청 조심한다. 나는 오빠가 나를 아이 취급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지만 꾹 참는다. 괜히 불평했다가 오빠가 화나면 라면을 적게 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기고, 오늘은 내 그릇 대신 큰 그릇을 가져다 놓았다.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들었다. 라면 한 개를 끓여서 오빠와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국물이라도 더 먹고 싶어 체육시간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오늘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돌았어.”

“너, 무슨 잘못 해서 벌로 운동장을 돈 거 아냐?”

“아냐, 우리 반 전체가 돌았어.”

나는 배가 많이 고프다는 걸 돌려 말했다.

역시 우리 오빠는 말 귀를 잘 알아듣는다. 내 것이 오빠 것 보다 조금 많아 보였다. 뜨거운 라면이 순식간에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라면을 먹으면서 곁눈질로 오빠의 그릇을 훔쳐봤다. 내 그릇은 벌써 바닥이 보이는데 오빠의 라면은 반절도 더 남아 있었다. 이제 나도 천천히 먹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라면 가닥을 앞니로 자근자근 씹었다. 생각은 천천히 먹고 싶은데 라면이 저절로 입안으로 쏙쏙 들어 가버렸다. 국물까지 다 먹고 나니 후회가 됐다.

“오빠, 내일은 4시에 먹을 거지?”

나는 일부러 오빠한테 말을 시켰다.

오빠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라면을 먹었다.

“오빠, 오늘은 엄마가 오면서 간식을 가져올까?”

오빠 눈이 동그래졌다.

“왜? 지난주부터 계속 안 가져왔잖아?”

“야!”

오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너 뱃속에 거지 들어있니?”

오빠가 소리치는 바람에 오빠의 라면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식탁 밑을 살펴봤다. 오빠가 흘린 라면가닥이 보였다.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안 나와!”

오빠가 버럭 소리쳤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라면가닥을 집어 먹었다. 오빠의 라면가닥이 훨씬 맛이 좋았다. 쫄깃하고 고소했다.

오빠가 식탁 밑에 있는 나를 잡아끌었다. 오빠의 힘은 아주 셌다. 오빠가 혼낼까봐 겁이 났다. 다시 울어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빠가 말했다.

“너, 아직도 배고프구나?”

오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빠, 어떻게 알았어? 내 얼굴에 배고프다고 써져 있어?”

“아니, 난 다 알아. 너 배고프니까 이것도 다 먹어.”

오빠가 라면을 그릇 째 내 쪽으로 밀어 줬다.

“오빠는 내 맘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오빠 최고다 그치!”

나는 신이나 오빠에게 윙크를 하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보였다.

“흘리지 말고 천천히 먹어. 그리고 다 먹으면 오빠 불러.”

오빠는 식탁에서 멀어져가며 말했다.

나는 아주 행복했다. 내가 기분 좋아해서 인지 오빠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오빠-, 다 먹었는데 오늘은 내가 설거지 할까?”

“안 돼! 그릇이라도 깨면 다쳐.”

내가 그냥 해본 소리인데 오빠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왔다.

“현지야, 내년이면 오빠가 전단지 돌리는 알바를 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라면을 두 개씩 끓여 줄게.”

“진짜? 오빠도 내년이면 돈을 벌 수 있어?”

“쉿! 피자집 이모가 특별히 시켜준다고 했으니까 이건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알았어. 특급 비밀이지? 그럼, 내입에 자물쇠를 꼭 채울게. 나 믿지? 오빠, 손가락 걸까? 도장 찍고 복사도 해줘?”

나는 큰소리를 뻥뻥 쳤다.

오빠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돈을 벌 수 있다니 어른처럼 보인다. 설거지를 하는 오빠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 소리 내어 웃었다. 금세 웃음이 전염됐나 보다. 오빠도 따라 웃으며 설거지를 했다. 오늘은 특별히 오빠를 더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 “오빠, 내가 노래 불러줄까? 오빠는 내가 노래 불러주면 좋지?” 하고 물었다.

오빠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내 꿈이 가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일부러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그래야 날이 어두워져도 우울해지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가 잠든 후에야 집에 온다.



<약력>조선대 국문학과 박사,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황금빛 울타리’ 당선, 2015년 동화부문 대산창작기금 받음, 동화 작품집 ‘선생님의 연애코치’, ‘초록깃발’, ‘아기제비 번지 점프하다’, ‘은골무’, ‘선생님 맞나요?’, ‘고양이가 데려간 여행’, 저서 ‘동화의 재구성 능력계발’, 현재 조선대 국문학과 초빙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광주교육대 등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