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도 여자, ‘택시 운전사’ 보다 김난희 |
| 2017년 09월 06일(수)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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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 영화를 관람한 나는 1980년 5월18일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이 문뜩 떠올랐다. 고향이 경상도인 나는 저녁식사 후 TV 뉴스를 통해 광주지역에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시민들이 군인들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거칠게 시위하는 장면을 시청하게 됐다. 도심은 전쟁터마냥 온통 검은 연기에 휩싸인 가운데 TV 남자 앵커가 범법자들과 여간첩이 광주에 침투해 시민들을 교란하고 있고 무법천지가 됐다고 언급했다. 지금까지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걸로 보면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소녀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후 나는 5·18에 대한 진실을 전혀 모른 채 광주는 무섭고 어두운 도시라는 인상을 남긴 채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대학진학 후 연극반 활동하면서 우연히 영화 ‘택시 운전사’에 소개된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물을 보게 됐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에 말문이 막히고 두려움 탓인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후에도 그 영상은 내 양심을 괴롭혔다. 폭력의 진실을 알고도 방관하는 침묵자 마냥 묘한 죄책감과 아픔이 공존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대학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정치권의 달콤한 거짓말에 강력히 저항하게 됐다. 그럼에도 시위로 잡혀가는 선배들과 친구들을 보면서 혹여 나에게까지 불똥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현실과 타협하면서 취업준비를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광주가 제2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졸업을 앞두고 만난 남편 때문이었다. 광주가 고향인 남편을 만난 이후에 그동안 망각했던 광주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지역감정으로 인해 양가 부모님들의 신경전이 심했고 서로 사투리가 심해 우리 부부는 상대 부모님에게 통역을 해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 당시 민정당에서 영·호남 사람들이 결혼하면 상금을 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또 경상도에서 신혼살림을 싣고 온 오빠가 기름을 넣기 위해 광주 주유소를 찾았는데 경상도 차량 번호판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할 정도로 지역감정이 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로 시집온 나는 하루는 데이트 신청을 한 시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나름대로 한껏 멋을 내고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5·18 구 묘역 이었다. 그 당시 5·18 구 묘역은 아물지 않은 오월의 상처로 분노가 가득했다. 그 날 광주의 상처는 고스란히 내 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광주 사람이 됐다. 이후 광주의 슬픔을 얘기하고 억울함을 전하는 대변인이 된 나는 친정식구들이나 지인들이 놀러오면 으레껏 5·18묘역 방문을 유도하게 이르렀으며, 광주에서 생활한지도 27년째가 됐다. 이처럼 광주댁이 된 나는 이번 ‘택시 운전사’ 영화를 보면서 순박하고 정 많은 광주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영화를 통해서 부디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아픔을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해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사랑받으며 나오는 에너지로 새롭게 비상하는 광주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