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문화 밸일장 스토리텔링 부문 대상]같은 하늘 아래에서 김민석 (국제고 2)

2017년 09월 13일(수) 19:47

어김없이 해가 온 누리를 비추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만 햇빛을 받아서인지 오색으로 빛나는 구름으로 하늘이 가려져있어 왠지 모르게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른다.

무등산 언저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민박집에도 오묘한 낌새가 문지방을 조금씩 넘어와 곤히 잠들어 있는 주인장의 눈꺼풀을 올렸다. 주인장은 “으-아” 라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크게 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낡은 대문에 ‘송강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민박집의 주인장은 간판의 이름을 의식한 건지 아님 주객전도가 일어난 건지 혹은 잘하는 거라곤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재능밖에 없어 옛 문학집을 달고사는 걸 의식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송강’이라 소개한다. 주인장은 오늘은 왠지 귀한 손님이 올 것 같은 느낌에 장롱 안에서 묵혀져있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빨고 평소 소박하게 먹어 비어 있던 냉장고 또한 상다리가 부러질 듯 많은 양의 찬거리를 준비해 차곡차곡 한편에 쌓아둔다. 그러고선 방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몇 번이나 보아 헤진 ‘송강집’이라 쓰인 고서를 다시 처음부터 한자 한자 곱씹으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어느덧 산 등 뒤로 얼굴을 감출 때 쯤 “이리 오너라!” 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한동안 잠들어있었던 문을 두드렸다. 주인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두르는 기색 없이 대문으로 걸어가 손님을 반기었다. 40대 언저리로 보이며 단정하게 넘긴 머리와 생활한복 같은 자주색 옷을 입고 다소 무거워 보이는 행장을 맨 남자는 주인장을 보더니 살갑게 웃으며 다가가 자신은 무등산을 보러 먼 곳에서 온 사람으로 어느새 해가 져 지금 등산하긴 위험하니 하룻밤을 묵고 싶다고 말하였다. 주인장은 그렇게 하라고 말하며 예전엔 행랑채로 쓰였지만 지금은 손님방으로 쓰이는 곳으로 그를 안내를 하였지만 그는 이를 사양하였고 자신의 무거웠던 행장을 털썩 마당에 떨어트리더니 쇠못 몇 개와 망치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쇠못을 마당에 박고 쇠기둥을 설치하는 것으로 짧은 사이 어느새 마당엔 1명이 잠자기 걸맞은 텐트가 세워졌다. 그는 너털웃음과 함께 자신의 보금자리는 이놈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주인장은 이에 기가 막혔는지 “당신 알아서 하시오.” 라 말하며 등을 돌렸다. 이 상황이 웃겨서 인지 아님 아침부터 기다리던 손님이 와서 인지 모르지만 얼굴의 긴장이 약간 사그라졌다. 오색구름 옷을 벗고 까만 밤의 옷을 걸친 하늘 아래 민박집의 마당에 놓여있는 평상엔 그들만의 만찬이 열렸다. 평상 옆에 조그마한 모닥불을 피어놓고 그 옆에서 편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먹으라고 하려던 주인장의 의도와 달리 손님은 혼자 먹긴 커녕 “전 혼자 밥 먹으면 여러워 밥알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주인장도 저랑 같이 한술 뜨시는 게 어떠신가요?” 라 말하며 자신에게 식사를 권유하였다. 주인장은 못 이기겠다는 듯 자리를 잡으며 ‘이런 놈을 줄려고 아침에 그렇게 고생하며 반찬을 만들었구나.’ 라 한탄하며 젓가락질을 하였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그는 주인장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날씨가 이제야 풀렸다, 밤이 쌀쌀하다, 무등산은 어떤 곳이냐 올라가기 힘드냐? 옛날엔 호랑이가 살았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무등산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는 또 뭐 없냐 등 실없는 질문이 계속되어 주인장은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불편한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를 거의 다 마칠 때쯤 손님은 자신의 행장을 뒤지더니 대 여섯 병의 술병을 꺼내고 자신과 주인장 앞으로 술잔을 놓았다. 뭐라 하련 틈도 안주고 그의 손에 있던 술병하나가 “칙” 이란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고 그는 주인장의 잔에 술을 따르고 그 다음 자신의 잔을 넘칠 만큼 채운 후 잔을 들고 건배하자는 눈빛을 보낸다. “가지가지 한다.” 주인장은 욕을 읊조리며 잔을 부딪쳤고 그로인해 술이 조금 넘쳐흘렀다. 손님은 허둥대며 자신의 입술을 댔다. 주인장은 혀를 차며 자신의 술잔에 담긴 술을 한숨에 마신다. 그리고 맛을 음미하자 숨이 턱 막히는 듯 몸이 잠시 경직되었고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술의 맛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손님은 이 모습을 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맛입니까? 혹시 폭포같이 세차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장면이 그려지지는 않습니까?” “…” “그 술은 이제는 구할 수 없는 금강산에서 나는 술입니다. 이런 술을 그냥 마실 순 없고 잠시 제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아서 술을 즐기시지 않겠습니까? 주인장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손님을 바라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은 자신의 술잔에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놓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한 십 몇 전 일입니다. 전 늦은 나이에 시험을 합격해 늦깎이 공무원이 되어 곧 강원도로 발령이 날 예정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너무 대견하여 제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 선물로 고른 것이 다름 아닌 금강산이었습니다. 강원도에 아름다운 산하면 무엇입니까 바로 금강산 아닙니까? 당시엔 금강산 관광이 활발히 일어났던 때라 가고 싶어도 기다려야했지만 그저 말로만 들어본 일만 이천 봉 우리를 볼 생각에 들떠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산악회에 들어가 금강산 여행을 신청을 하였고 드디어 금강산으로 가는 첫 번째 경계를 넘어 갔습니다!” 손님은 말을 하다가 목이 탔는지 술잔에 술을 채워 단숨에 들이켰고 아직도 빈 술잔을 쥐고 있는 주인장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주인장은 채워진 술을 천천히 넘기었고 이를 한방울 한방울 곱씹었다. 그러자 어느 산의 자태가 주인장의 머릿속에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타국이란 느낌이 강해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금강산의 자락에 도착하여 그 흙은 밟아보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온 거지요. 산행을 하면서 금강대에서 날아다니는 학을 봤다든지 진헐대에 올라 하늘 가까이 서보아 신선 흉내를 내본 것, 개심대에서 만 이천 봉을 헤아려보는 멋진 곳을 가봤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렛소리의 근원인 만폭동이라는 거대한 폭포를 마주하자 전 또 한 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이 만폭동을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라 비유하였죠. 전 이 폭포를 이렇게 비유하고 싶었습니다. 직녀가 짜낸 곱디고운 결을 가진 베. 멀리서는 우렛소리 같지만 가까이선 마치 저희를 앉아주는 듯 부드러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인장과 제가 마시는 술은 그 금강산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술입니다. 그렇게 기다림은 길었지만 만남은 짧았던 금강산과의 인연이 끝난 후 강원도로 파견이 된 전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다시 한 번 보겠다는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3년 뒤 금강산 관광은 폐지되었고 그 곳엔 다시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여행을 다녔습니다. 옛 어느 사람이 치악산도 둘러보고 삼각산도 가보고 관동팔경이라 불리는 곳도 가보았습니다. 옛날 어느 관리가 갔던 길을 그대로 가본 겁니다. 그중 역시 기억에 남는 건.” 손님은 비어있는 주인장의 잔에 새로운 술을 따라줬다. 검은 술잔에 담긴 투명한 술은 일렁이며 생긴 빛이 별이 되어 밤하늘을 투영했다. “명왕정에 앉아 북두칠성에 담겨져 밤하늘의 정기를 가득 담은 이 술을 마시며 경치를 즐기며 보는 것은 정말 일품이지요. 주인장 술잔을 들이키십시오. 맛이 어떻습니까?” “… 맛있고만….” “역시 그 술의 진가를 알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여행하다가 고향 땅의 산이 그리워져 무등산에 왔다가 이렇게 주인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소감이 어떻소, 주인장?” “무슨 소감을 말하는가?” “당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인물을 만난 기분 말이오.” “그 무슨…” 이 말과 내뱉은 순간 주인장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눈이 한층 더 커졌다.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시오?” 손님은 크게 웃으며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이번의 웃음은 그전의 너털웃음과는 다른 점잖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그저 산을 오르러 온 평범한 객일 수도, 자네가 만들어낸 허상일수도 있고 지나가다 들린 신선이자 그대의 이름과 그대가 애정을 주는 책의 주인일수도 있지.” 말을 하면서 손님은 계속 술을 따라 잔을 들이켰다. “어찌… 나를 만나러 왔는가?” “어찌라…”그저 나를 기억해주고 만나기를 기원하는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자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지고 싶은 나의 바람일 뿐. 별 다른 의미는 없다네. 그저 그대는 지금의 일을 그대의 방법만으로 기억을 할지 잊어버릴지 왜곡을 할지 선택하기만 하면 되네. 시간이 얼추 됐군.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네. 만나서 반가웠다네.” 손님은 뒷짐을 진 체 일어나 자신의 술잔을 들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쨍그랑 이란 맑은 파쇄음과 함께 주인장의 의식 또한 조각조각 찢어졌다. 어김없이 햇빛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빛을 가리던 오색구름은 이제 없다. 오묘한 낌새를 대신해 따스한 햇빛이 대문을 살그미 넘어와 평상에 누워있는 주인장의 눈꺼풀을 올려주었다. 주인장은 머리가 어지러운 듯 이마에 손을 얹은 체 몸을 일으켰다. 어제 과음이라도 한 것인가 몸이 무겁다. 주인장은 자신의 옆에 펼쳐진 채 놓여있는 고서를 보고서 어제 이걸 보다가 잠들었나보다 하며 크게 기지개를 핀 후 일어선다. 무언가에 눌려진 자국이 있는 잔디와 불이라도 지폈는지 검게 변한 재가 있는 마당을 지나 한걸음 한걸음 대문으로 다가가 활짝 연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불어와 주인장과 고서를 덮친다. 고서는 촤르륵 소리를 내며 어느 한 작품의 쪽이 펼쳐졌다. 오늘따라 관동별곡이란 제목이 눈에 띄는 그런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