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사랑을 그린 화가 양점열 동화

2017년 10월 23일(월) 19:25

마한나라 임금님은 나라 일 때문에 너무 바빴어요. 여행을 다닐 수도 없고, 친구도 없었어요. 그래서 틈틈이 아름다운 그림을 모으고 감상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수많은 그림들이 궁궐 한 구석을 차지했어요.

하루는 그림을 감상하던 임금님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이 많은 그림 중에서 사랑을 찾을 수 없으니…….’

처음 그림을 보고 행복했던 때와는 달리, 더 많은 그림을 보았는데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기만 했어요.

‘사랑을 오래 걸어두고 감상할 수는 없을까?’

임금님은 나라 안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사랑을 그려온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겠다고요.

“서방님도 그림을 한 번 보내보세요.”

무등산 골짜기에 가난한 화가가 있었어요.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필요하면 그냥 그려주었어요. 고맙다는 말은 많이 받았지만 돈은 많이 받지 못했어요. 어쩌다 몇 푼 받은 돈은 집 안 식량 마련도 안 됐어요.

“내가 그려놓은 그림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게요?”

그는 아내의 작은 투정에 콧방귀를 핑 뀌고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아내는 그의 뒷모습을 쓸쓸히 쳐다보다 사랑채로 갔어요. 그곳에는 딱 하나의 그림이 있었어요. 처음 아내를 사랑하여 집으로 데려온 날 그린 것이었어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행복한 시절을 보낼 때였어요. 물론 남편이 가장 아끼던 것인 줄 알아요. 그래도 살림살이가 너무 힘든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그림을 삼베로 고이 싸서 관아로 보냈어요.

넓은 궁궐 뜰에 많은 그림들이 놓였어요. 수많은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임금님은 고개를 살래살래 옆으로 저었어요. 모두 사랑을 표현한 그림들이었지만 사랑이 풍겨나지 않았어요. 한숨을 쉬던 임금님의 눈이 갑자기 커졌어요. 한쪽 구석에 허름하게 놓여있는 그림에서 사랑이 물씬 풍겼어요.

“바로 이게 사랑이야. 옷도 허름하고 머리도 단정하지 않지만 얼굴에서 풍기는 이 사랑을 보아라.”

임금님은 춤을 추며 그 그림을 자신의 침소로 가져갔어요. 그리고 틈만 있으면 그림 속의 여인을 보고 행복해 했어요.

그러나 임금님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그림 보다는 직접 그 여인을 곁에 두고 싶었어요.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던 임금님은 마침내 화가의 부인을 궁궐로 불러들였어요. 그림 곁에 여인을 두고 사랑 받기 원했어요. 그러나 여인에게서는 물론 그림에서도 사랑이 사라져버렸어요. 아무리 부탁하고 호소하고 윽박질러도 그림에서 처음 보았던 사랑을 찾을 수 없었어요.

임금님은 화가 나서 화가의 부인을 그림과 함께 옥에 가둬버렸어요. 그리고 자신이 골랐던 그림이 가짜였다며 다시 사랑의 그림을 찾는다는 글을 내렸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사라져버리자 화가는 관아로 찾아가 호소를 했어요.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슬픔에 잠겨 집에 돌아온 화가는 울며 보채는 자식들을 달랬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짙어만 갔어요.

화가는 다시 붓을 들었어요. 자신을 위한 두 번째이면서 마지막 그림을 그렸어요. 세 아이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쉬지 않고 그렸어요. 그리고는 다시 관아로 가서 호소문 대신 그림을 올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원님은 그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임금님께 올려 보냈어요.

“이런 게 진짜 사랑이야!”

임금님은 다시 벌쩍벌쩍 뛰며 기뻐했어요.

“내가 직접 이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상을 내려야겠다.”

화가는 세 아들과 함께 임금님께 갔어요.

“참으로 훌륭한 재주를 가졌구나.”

임금님의 시끄러운 칭찬에 화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동안의 일을 말했어요.

화가의 말을 듣던 임금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어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림으로 사랑을 얻으려고 욕심을 부린 내가 잘못이야.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내 후한 상을 내려 보답할 테니 받아주기 바란다. 대신 이 그림 두 점만은 나에게 주지 않으련?”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래 남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저의 일이고 행복이었습니다.”

화가는 부인과 함께 많은 선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였어요.

화가는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다녔어요.


<약력> 전남매일 신춘문예·아동문예 신인상에 동화로 등단, 장편동화집 ‘다시 찾은 날개’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원, 한국아동문학인협회원,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원, 써레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