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과 교육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2017년 11월 02일(목) 19:30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어렸을 때 부모님께 꾸중을 들으며 자랐다. 하교 길에는 해찰도 심해서 곧장 집으로 오지 않고 광주천에서 놀거나 문구점 앞에서 구경을 하거나, 남광주시장통에서 낙지나 미꾸라지 등을 파는 어물전에서 물고기의 움직임을 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성거리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도 역시 선생님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손장난을 하거나 낙서를 하는 등 공부를 잘 하기 어려운 성향을 갖고 있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잉여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다.

나는 어디서나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정치경제를 가르치셨는데, 급훈을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로 정하고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들며 설명해 주셨다. 국가에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역시 손장난을 하면서 들었는데,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국가나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니구나.’ 그렇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뭔가 그런 굴레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다른 삶의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황했다. 내가 재미있거나 흥이 나거나 몰입하는 일들은 대부분 세상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여기는 일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칭찬을 받지 못했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잘 하는 그런 학생도 사회인도 어려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과서에 낙서하기를 좋아해서 화가가 됐고, 학창시절 매를 많이 맞아서 자존감이 묵살당하는 사건들을 겪었지만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뭔지 모르지만 매를 맞으면서도 낙서를 멈추지 않았으니까, 설명할 수 없는 타고난 기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내 작업을 한다’라는 어떤 고집 같은 게 있는데, 그게 예술의 길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밖에서의 평가보다는 스스로의 만족에 의해서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대미술에 적격인 성격이다. 늘 내적 동기로 행동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그 동안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내가 순탄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도록 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성향을 그대로 아들이 닮았다. 요즘 말로 학교 부적응의 대표적인 주자가 돼가고 있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돼 있으니 얼마나 선생님이 가르치기 힘들까? 선생님의 전화를 받을 때 마다 아들이 학교에서 하는 이상한 행동들이 나도 어렸을 때 했던 그런 행동이라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지우개 때만 벗기고 있어요!”, “수학시간에 고개를 들지 않고 손으로 뭔가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그런데 소리가 나서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거든요.” “학교와 가정에서 동시에 교육은 이뤄져야합니다. 아이가 너무 산만해요.” “수업에 방해가 되는 엉뚱한 이야기를 계속해요.” 이런 내용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초등하교 때 했던 행동을 그렇게 똑같이 하고 있을까? 고집도 너무 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자기가 선택한 것만 열심히 하는 그런 아들을 내가 낳아서 키우게 됐다. 엄마가 육남매를 키우시면서 힘들 때마다 자주 하셨던 말, “너도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딱 그 말씀대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늘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네가 선택하고 네가 책임져라!” 어차피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우뚝 서야 할 존재인데 내가 누구를 키운다고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가족으로 함께 얼마동안 살아갈 뿐이니 기다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장난이 심하고 산만하기는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정말 꼴등인 것 같은데,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런 부분도 나를 닮았다. 남의 평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적평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내면의 소리를 듣는 힘이 타자와 소통하는데 공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기본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됐다. 우리가 누군가를 교육시킨다고 외부 인이 돼서 평가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그 사람을 타인의 시각에 맞추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인간다운 교육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좋은 교육방법은 스스로 발현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게 드러나므로.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고, 외부의 평가에 의해 비교되는 순간, 자존이 무너지며 불행의 씨앗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