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자서전을 쓰게 하소서 이현 아동문학가

2017년 11월 02일(목) 19:30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과 함께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이 벌써 어둠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의 환한 웃음에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핑계 삼아 소리 내어 꺽꺽 울어버릴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며, 깊고도 깊은 우울의 계곡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며,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뭔가를 하려해도 마음뿐, 몸이 따르지 않고, 집중력 또한 흐려지니 성과를 낼 수도 없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여기가 아팠다, 저기가 아팠다를 반복하며 잠은 오지 않고 소화도 안 되니 가을이 슬플 뿐이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될 텐데, 그걸 못해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들 말하지만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우울도 병이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울도 초기엔 마음만 먹으면 좋아질 수 있다.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을 기본으로 하여, 뭐든지 좋다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산소 운동과 함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쉽게 생각했던 감기도 치료하지 않으면 폐렴과 같은 합병증이 올 수 있는 것처럼 우울 또한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치료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20년이 되면 인류를 가장 괴롭힐 질병이 암도 아니고 치매도 아닌 우울증으로 꼽고 있는 만큼, 우울은 마음만 고쳐먹으면 치료되는 질환이 아니다.



“여기 오면 말도 하고, 밥맛도 좋아요.”

“맞여, 맞여. 집에 가만히 있으면 눈물만 찔끔찔끔 난단 말이요.”

“여기서나 재밌게 웃제, 어디서 또 웃겄소. 안 그라요?”



얼마 전, 자서전쓰기 수업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말씀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림책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삐뚤빼뚤 글씨를 쓰고 꽃을 그리고 색칠을 하며 피어나는 웃음소리에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도 이 분들은 두 발로 걸어 여기까지 올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래서 생각한다.

어르신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서전 쓰기와 같은 시간들을 통해 내 안에 있는 것들, 버리고 비워내야 할 것들을 온전히 버리기를 바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시간이니만큼, 서로 간에 마음껏 웃고 떠드는 소통을 통해, 어둠을 건너 밝음의 삶이되기를 희망한다. 글을 통한 자서전 쓰기뿐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법의 자서전 활동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말이나 그림이나 몸짓 등,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 몸도 마음도 더욱더 건강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가을, 김현승 시인님의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을 가슴에 담으며. 오늘 이 순간도, 밝고도 아름다운 열매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