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불두화와 구둣방 최미경 수필 |
| 2017년 12월 04일(월) 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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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하면서까지 신을 만큼 좋은 구두도 없고 구두 닦을 일도 없으니 그곳은 나에겐 그저 길 한 모퉁이에 서 있는 전신주처럼 무심하게 지나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한여름이 오면 ‘저 좁은 공간에서 일하려면 얼마나 더울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그곳을 지나치곤 했지요.
며칠 전입니다. 구둣방 앞을 지나가는데 지붕 위로 하얀 불두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매년 불두화는 피고 졌을 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지나쳤을 텐데 왜 그날 그 풍경이 내 마음을 끌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불두화와 구둣방이 함께 있는 풍경. 그냥 스치며 지날 때는 그저 무슨 나무가 하나 있는 것으로만 인지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여간 경이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둣방은 아파트 상가가 있는 축대 아래 자리하고 있고 축대 한옆으로 조금 큰 화분 크기만큼의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 작은 불두화 한 그루가 있는 모습입니다. 나무는 축대를 피해 구둣방 쪽으로 가지를 뻗고 자라서 찬찬히 살펴보니 구둣방이 마치 불두화 우산을 쓴 것처럼 보이네요. 하얀 불두화 무늬가 있는 초록우산 말이에요.
내리는 눈을 대신 맞아주고 뜨거운 뙤약볕을 가려주었을 불두화 나무, 오래된 친구에게서 날아온 그림엽서를 손에 들고 바라보듯 찬찬히 보았습니다. 불두화와 구둣방만을 눈에 넣고 바라보니 좁고 초라한 곳으로 보였던 구둣방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사는 숲속의 작은집처럼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구둣방 주인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며칠을 오가며 구둣방을 눈여겨보았지만 검은 천이 드리워진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하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구둣방 위 불두화 옆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머리는 염색을 해서 구두약만큼이나 새까맣고 주황빛이 나는 셔츠를 입은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그 사람이 구둣방 주인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안도의 미소가 제 얼굴에 번졌습니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 만난 구둣방 아저씨는 몸이 불편한 분이 많았거든요. 하긴 불편한 분이었다면 그동안 제 눈에 띄었을 텐데 관심을 두다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습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며 바라보는 불두화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크고 작은 사찰에는 불두화가 환하게 피어 오가는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겠지요. 여기 이 복잡한 거리 한 모퉁이 구둣방 위에 핀 불두화를 보니 부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꽃이 자리를 봐 가며 피어나지 않듯이 부처님의 사랑도 그러하겠지요.
저는 종교는 없지만 ‘성불(成佛)하십시오.’ 하는 인사말을 좋아합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라는 말이니 큰 축복의 인사라 생각합니다. 마음공부가 별것일까요. 번뇌가 없는 평안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물을 주는 동안 걱정이나 번뇌는 멀리 사라지겠지요. 그리고 피어난 불두화는 구둣방을 부처님의 가호(加護) 아래 편안한 모습으로 지켜주는 듯 보였습니다.
늘 스치던 일상의 풍경이 말을 걸 때가 있습니다. 하얀 불두화가, 오래된 구둣방이 나에게 말을 건 비밀스러운 봄날이 지나고 있습니다.
<약력> 2014년 광주문협 백일장 최우수상, 2015년 대한문학 등단, 저서 ‘찻물을 끓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