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문예르네상스를 꿈꾸다](8) 신기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강진 해주 최씨종가 세월을 품어낸 宗宅…宗婦 손끝으로 이어진 삶의 지혜 |
| 2017년 12월 07일(목) 1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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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강진군 군동면 신기마을에 있는 해주 최씨종가에 다다르면 집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대문 위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글귀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봄이 시작돼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으리라.’
잎이 다 떨어진 마을 감나무 가지에 드문드문 달려있는 다홍빛 홍시가 이미 가을이 완연히 찾아들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지만, 계절에 관계없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과 목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바람이 차가워졌을지언정 마음에 훈김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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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이 잘 된 으리으리한 종가와는 다를 거라고, 집이 많이 어지러져 있을건데”라고 멋쩍게 말씀하시는 해주 최씨 종부인 백정자 할머니의 목소리 뒤로 외부인의 인기척을 느낀 마을 개 두 마리가 골목길 옆 주택 옥상에서 컹컹 짖는다.
해주 최씨종가는 종가의 전통장인 ‘해주최씨 즙장’과 더불어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의 전통장을 마을 공동사업으로 30여년간 지속적으로 꾸려오고 있다.
최근에는 강진군과 강진장맛 사업추진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지역 먹거리 사업으로 발전한 사례로 이미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얼마 전 KBS ‘아침이 좋다’에서 촬영을 다녀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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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이곳 신기마을은 마을의 90%가 해주 최씨 성을 가진 해주 최씨 집성촌이다.
사업장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직원으로 보이시는 분에게 해주최씨 종가가 어디인지 묻자 “저도 최씨인데요”라는 엉뚱한 듯한 대답이 돌아왔던 건 어쩌면 종가 일이 바로 내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정자 할머님을 따라 대문 안에 들어서자 모습을 드러낸 가옥은 기품있으면서도 친근한 시골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집 바로 뒤에 병풍처럼 둘러있는 수리봉의 위엄, 가옥 앞의 여유를 간직한 간소한 정원, 널찍한 마당에 청백리였던 선조들의 기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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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옥은 80년쯤 됐지만 본 집터에서 자손들이 대대로 지내온 지는 400년에 달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무려 17세기 조선시대 때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말이 된다. 가옥 한 가운데에 걸린 가훈은 고려시대 문신인 문헌공 최충이 두 아들인 최유선과 최유길에게 내린 것으로 21세기인 지금까지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를 견딘 종가 또한 시간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모두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종가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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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놓아두면 사는 게 힘이 드니까”라는 종부인 백정자 할머님의 한 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보존이 잘 된 다른 종가집처럼 가옥을 보전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모종의 안타까움과 함께 가옥을 삶의 공간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날들의 풍경이 겹쳐진다.
말없이 서있는 가옥 앞을 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표상일뿐만 아니라 이제는 마을의 경제적 구심점으로 변모한 해주 최씨종가에는 종가에 내려앉은 수백년의 세월과 함께 현재의 시간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