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폐수사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김희준 |
| 2017년 12월 11일(월)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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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게닝 제도란 수사 기관이 자기 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범죄를 증언하면 그 대가로 구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유죄협상제 또는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도 한다. 이 제도는 주로 미국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고,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도 제한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내년 6월부터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력하면 검찰이 구형량을 줄여주는 ‘사법거래’가 도입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행법에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언론 등에서 말하는 플리바게닝은 제도상의 플리바게닝이 아니라 사실상 또는 관행상의 플리바게닝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플리바게닝의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것은 수사에 협조하는 경우 구형량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번 장시호씨 사건이 그런 경우였다. 그리고 특수나 강력수사 등에서 수사협조를 받고 혐의의 일부를 기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공무원 뇌물죄를 수사하는데 공여자가 기업인인 경우 횡령이나 배임혐의를 포착한 경우에도 공여진술을 받아낸 대가로 이를 기소하지 않거나 일부만 기소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모두 기소되면 회사가 망하거나 중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으므로 수사에 협조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피의자성 참고인이란 말이 있다. 이는 법률상 용어는 아니고 실무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수사에 협조하면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으면 입건하겠다는 취지이다. 이것도 역시 사실상 플리바게닝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법률상이 아닌 사실상 플리바게닝을 활용하고 있다.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은 검찰로서는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인권의식 향상과 의식수준의 선진화, 변호인 참여증대 등으로 갈수록 당사자로부터 필요한 진술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증을 확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사실상 수사에서 물증확보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범죄에서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금으로 뇌물을 주고 받았을 경우에는 계좌추적을 해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여자의 진술이 절대적인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부패범죄에만 제한적으로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범죄의 경우 관련자의 진술 없이는 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플리바게닝이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의 효율성 증대를 위하여 플리바게닝 제도뿐만 아니라 참고인증언면책제도 등 관련자의 진술확보를 위한 외국의 여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도입되지 못한 것은 여러 반대의견들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고,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가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플리바게닝 도입은 수사기관에 또 하나의 권력을 추가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플리바게닝 제도에도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수사의 효율성 증대로 형사사법비용이 절감되고, 중요한 범죄를 밝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범죄는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도록 처벌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진술의 대가로 범죄자와 협상하여 형량이나 혐의적용에서 고려하는 것은 사법거래로서 정의에 반하고 수사편의주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중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진정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