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에 짐 지워진 숭고한 책무 민종택·영암소방서 구조대장

2017년 12월 11일(월) 19:01

화재현장에서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채 시멘트 난간에 걸터 앉아 컵라면을 먹는 소방관의 사진을 보면서 두려움에 허기마저 잊었을 그의 심정을 헤아리며 강한 동료애를 느낀다.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센터에 벗어 놓은 신발이 주인을 찾지 못하지 않을까 늘 마음 조인다”는 소방관들의 애잔한 토로에 뭉클해진다. ‘소방청 독립’과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소방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라는 대통령의 명령처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언어는 흔하지 않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시울 붉어졌을 동료 소방관들의 감동적 전율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소방은 경찰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안전 시스템인데도 경찰의 개혁과 발전에 늘 뒤쳐져 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인 듯하다. 정작 중요함에도 ‘힘 없는 조직’으로 취급되어 온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OECD 회원국 운운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비로 고가의 장비를 사서 써야 했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채 불길에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의 고독한 처지를 모두가 외면했었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소방 업무의 성격이 화재 예방·진압을 넘어 구조·구급 등 국가적 재난대응 영역으로 확장됨에 따라 분할된 지휘체계의 일원화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열악한 소방관 처우개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방에 대한 사무·인사·지휘체계는 현행 체제를 유지한다는 점과 예산 역시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이 시·도에서 편성해 집행하도록 한 점에 대해 “국가직으로 신분은 전환하기로 했으나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소방관의 처우가 국민안전과 직결된 상황에서 지방에 산다고 안전 혜택을 못 받고, 수도권에 살아서 혜택을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실질적으로 국가직으로 전환해서 지자체간의 소방공무원 처우 격차를 완화하고 통일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도 안전이 담보될 때 비로소 향유할 수 있다. 안전과 치안은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선결요건이다. 결국 소방과 경찰은 나의 생명과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될 중차대한 SOC인 셈이다.

국민은 그들에게 고위험의 책무를 부여하면서 제복을 입혔고 그에 따르는 사명도 함께 부여했다. 하지만 사기와 영예가 수반되지 않는 사명은 공허할 뿐이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투철한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오로지 국민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대한민국 모든 소방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42년 만의 소방청 독립과 소방관 국가직 전환, 제복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열렬히 환영한다. 제복의 책무를 다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복을 향한 오마주도 봄날 은은 향 퍼지듯 했으면 좋겠다. /민종택·영암소방서 구조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