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제는 우리가 낼게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2017년 12월 28일(목) 18:56

“이제, 문제는 우리가 낼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붙어있는 이 붉은 글씨의 포스터는 ‘민주주의와 표현’이 키워드인 청소년교육문화축제의 포스터였다. 이 발칙한 느낌의 제목을 보면서 전당에 들어섰다. 전당으로 청소년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가 무대에 서는 경우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만든 축제와 전시가 열리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한 문장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제, 문제는 우리가 낼게’라는 주제로 학생들이 주체가 돼 새로운 교육문화를 보여주는 축제를 5·18민주주의의 성지인 구 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펼치고 있었다. ‘학생들이 문제를 낸다고?’ 학교의 현장에서 수동적으로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제들을 세상에 던지는’ 것이다.

그럼, 청소년들이 내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을 비롯한 교육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 정치인, 그리고 학부모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다. 그런데 이 발칙한 제목에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 있는 진정한 탐구의 과정이 포함돼 있다. 기존의 교육에 대한 관점을 뒤엎는 얼마나 매력적인 발상인가! 만약 문제를 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문제를 내려면 답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청소년들이 문제를 내는 과정이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됐다. 결국 답은 청소년들이 알고 있었다. 스스로 문제를 내는 것, 스스로 질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현명한 해결 방법을 찾고 과정에서 협업하며 삶에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그동안 어른들이 낸 문제를 풀어왔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직접 내는 사람이 되어서 학교를 들여다보니, 먼저 종일 머물면서 공부하는 학교의 공간들의 문제가 보였다. 학생들이 주인이어야 할 학교 공간이 일제식민지 시대에 편리하게 통치하기 위한 관리 시스템과 비슷한 구조의 건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앞에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면, 여러 명의 학생들은 선생님을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듣게 만들어진 교실. 청소년들은 이 교실 공간의 책상 배열 등이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이 학교에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문제를 내다보니 발견된 것 중의 하나다. 학교라는 공간, 교실이라는 공간, 책상과 의자의 배치 등 학생들은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며 힘들 때는 쉴 수 있고, 생일 파티도 하고 작품도 전시하며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필요하다고 학교에 요구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 비어있는 교실이나 창고처럼 방치된 공간을 학생들과 공간을 바꾸는 예술가들과 협업해 새롭게 사용자인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공간으로 바꾸는 일들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 수업의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표현 영역인 ‘예술’을 배우게 된다. 민주주의는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독재에 저항했던 세계사 속에서, 프랑스의 68혁명 이후의 파리교육의 변화를 통해서 배우고, 5·18광주민주화운동과 한국 민주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최근 촛불광장을 통해서 배운다.

나는 광산구 야호센터의 요청으로 청소년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예술은 저항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함께 발언하는 티셔츠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만약 청소년인 우리가 우리들의 문제로 촛불집회에 나간다면 어떤 티셔츠를 입고 나갈 것인가? 피켓이나 현수막을 대신해서 어떻게 티셔츠에 발언을 담아낼까?”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먼저 자신의 삶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봐야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지도 깊게 생각하게 됐다.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하게 됐다.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은 이렇게 스스로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표현했다. 유쾌하게 혹은 처절하게. 그리고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니 저절로 몸짓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우리가 낼게”라는 축제는 이런 작업들이 모여 발표의 장이 됐다. 학생 스스로 공간을 바꾸고 나아가 삶을 바꾸는 시도가 지난 14일부터 3일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펼쳐졌다. 나는 그곳에서 찬란한 광주의 멋진 미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