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 환자들의 어머니, 여성숙 선생 홍인화 전 시의원·국제학박사

2018년 01월 01일(월) 20:32

여성숙 선생은 평생동안 폐결핵환자를 돌보아온, 한국의 여성 슈바이처다. 지금 100세다. 얼마 전 100세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여주셨다. 휠체어에 타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목소리는 또릿 또릿했다. 2년 전 찾아뵈었을 때 선생은 묵묵히 선을 베푸는 이들을 존경한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거절하며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기억이 나질 않아” 하면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나 신문기사 스크랩 해 놓은 것과 사진 몇장을 꺼내어 보여주셨다.

여선생은 정말 훌륭한 분이다. 2만 7천여평에 이르는 땅과 병원시설을 사회복지 법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 기증하고, 반평생을 친구로 지낸 카딩턴과 결핵퇴치를 위해 헌신해왔다. 이 때문에 카딩턴은 ‘결핵환자의 아버지’로 여성숙 선생은 ‘결핵환자의 어머니’로 기억되고 있다. 1950년대 국내 유일의 여성 흉곽내과 전문의이자 결핵 전문의였던 여선생이 완치시킨 환자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나의 스승 여성숙 선생에 대한 감사의 글들을 전하고 있다.

평생을 바쳐 사랑을 실천한 선생이지만 자신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리셨다. 다른 사람들의 칭송도 무척 부담스러워 했다. 언론 보도는 물론, 여러 기관에서 수여하는 상도 모두 거부했다. 다만 1988년 인도주의실천의사회가 수여한 상을 받은 것이 유일하다. 2009년에는 사단법인 오월어머니회가 선정하는 ‘오월어머니상’을 받는 것도 거부해 끝내 단체상으로 선정했다. 세상에 드러나기를 스스로 삼가며 오로지 주님의 사랑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다. 여선생은 그 중 대표적인 인사가 아닌가 싶다. 선생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호남 땅에서 폐결핵환자를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여성숙 선생의 삶이 세밑에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든다.

자연과 벗하며 환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온 여선생은 1918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18세에 선교사를 따라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와 식모살이까지 하면서 독학으로 일본유학을 다녀왔고 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전신인 경성여의전을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전주예수병원에서 수련의를 지내면서,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로 결심하고 당시 국내 유일한 여성 흉곽내과 전문의이자 결핵 전문의가 되었다. 60년대에,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폐결핵 환자들이 많을 때 광주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에 폐결핵 전문의사로 환자들을 치료했다.

여선생의 말에 따르면 제중병원에는 병동 하나가 무료 환자들 병동으로 따로 이용되고 있었다. 폐결핵 환자들은 가족이 있어도 전염병이기에 같이 살며 돌볼 수가 없었다. 가족이 있고 없고를 떠나 폐결핵에 걸리면 상관없이 집을 나와야 했다. 당시 폐병은 고칠 수 없었던 질환인지라 진단만 받으면 죽는 병이었다. 암은 전염이 안 되지만 폐병은 전염병이라서 가족들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어서였다. 함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폐병은 빨리 죽지도 않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재산을 다 탕진한 뒤에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폐결핵 환자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멀리해야 했고, 연인이나 가족들은 하루속히 멀리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 여선생은 무수히 많은 폐결핵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가진 것이 없다. 무소유가 된 지 오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손도 없다. 여선생에게 없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겸손하다.

여선생이 지내고 있는 무안군 삼향면 소재 ‘한산촌’은 디아코니아자매회로 지금은 8명이 ‘언님’으로 섬기고 있다. 독신여성으로 평생을 헌신하겠다며 여선생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곳에 함석헌·안병무·황석영·김지하가 단골이었고, 세상의 악과 싸우다 권력에 쫓기던 김남주 윤한봉 윤영규 등도 숨겨줬던 곳이기도 하다. 여선생에게 다녀오며 뭔가 가슴에서 뭉근한 것이 느껴졌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