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의 실황중계 연주회 감동 신희흥 태이움직임연구소 대표

2018년 01월 18일(목) 18:46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려 갈까 말까 여러 번 고민되었다. 머리로는 고민하는데 내 핸들은 빛고을시민문화관으로 가고 있었다. 눈길을 뚫고 간 그 자리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가지 않았으면 그 설레임과 가슴벅참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마터면 아쉬웠을 자리였다. 양손을 우아하고 절도 있게 사용하면서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성시연의 지휘는 관객 모두에게 긴장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을 선물해주었다. 광주문화재단이 지난 9일 밤 8시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서울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를 영상으로 생중계하는 연주회에서였다. 장애아들이 빚어내는 화음은 실로 감동이었다. 어떤 프로연주자들도 하지 못할 감동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수십명의 장애아 학생들이 KBS교향악단 협연으로 ‘거위의 꿈’을 부르는 모습이 부끄러움과 감동을 한꺼번에 주었다.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게 어디 필자 뿐이랴. 동행한 이들도 그 대목에서 감격해했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과 호흡하며 합창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영상 실황중계라는 것 때문에 사실 살짝 망설였다. 실제 공연장에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물론 영상과 소리가 엇박자가 나고 생생한 맛이 떨어지는 한계가 전여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0.8초 가량의 갭이 주는 피로감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회를 실황으로 광주에서 무료로 감상한다는 거,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럿이 감상한다는거, 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연신 큰 박수소리와 함께 브라보, 앵콜 등을 외치며 잠깐 잠깐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차츰 이런 방식의 공연도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자연스레 들었다. 악기나 연주자의 모습 등을 디테일하게 카메라가 잡아주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 감동은 2부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클래식계의 아이돌,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에서 폭발했다. 김봄소리는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했다. 아니 연주가 아니라 퍼포먼스였다. 가냘픈 체구에서 품어내는 카리스마는 무대를 채우고 현장을 뛰어넘어 스크린을 뚫고 나와 빛고을시민문화관 객석으로까지 전해졌다. 그 고혹한 몸짓, 온 몸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폭풍연주는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집에 와서 김봄소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관록넘치는 실력을 갖춘 친구였다. 뮌헨 차이코프스키콩쿠르, ARD 국제음악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를 석권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작년 11월 말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데뷔 리사이틀을 10분 만에 매진시키며 전 세계 청중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선우예권은 더 말해 무엇하랴. 건반 위를 역동적으로 춤추는 그의 연주는 왜 클래식계에서 ‘선우예권, 선우예권’하는지를 증명시켜주었다. 가히 연주회 때마다 매진사례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에너지 넘치는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우르르 꽝꽝 내달리다가도 섬세하게 포인트 포인트 집어내며 귀와 눈 그리고 나의 감각을 동시에 즐겁게 해주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세련된 무대매너도 너무 좋아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우예권은 북미 최고의 피아노콩쿠르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샛별 피아니스트로 이번 무대에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 3악장을 연주하며 감흥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영상도 음향도 다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정말 컸다. 가성비가 큰 연주회였다는 생각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중앙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형편에 맞는 신년음악회를 꾸렸었더라면 하는 거다. 물론 예산확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말이다.

지역의 자생력을 키워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장 밖을 나오는데 흰 눈이 보송보송 내리고 있었다. 이래저래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