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안개와 곰팡이 수필 배병수
2018년 01월 22일(월) 19:03
내 고향은 섬진강 상류지역으로 안개가 많다. 안개가 많으면 코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배는 허기지고 먹을 것이 없는 시절에 안개가 자욱하면 도로변 밭에 매달려진 가지나 오이를 내 것처럼 맛을 보기도 했다. 밭주인이 있어도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을 것이니 별 염려 없이 실례를 했다. 어쩌다 주인이 볼 때도 있었지만 어린 얘들이라 애교로 보아 넘기는 시절이었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게 많이 끼인 날에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차츰 걷히고 쾌청한 파란 하늘이 보이면 어린 내 마음에도 푸른 하늘을 새처럼 날고 싶기도 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텅 빈 가슴에 맑은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 머리는 맑아지고 컨디션은 최고조를 이루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거리고 호밀밭에서 지지배배하며 종달새가 울던 모습이 생생하지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종달새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못보고 지내 온지 세월은 몇 십 년이 흘렀다.

학창시절 친구와 광주시내에 인접한 무등산을 등산했다. 한 참 혈기 왕성한 시절에 어느 한사람이 의견을 내면 준비도 없이 친구 의견에 곧바로 동조하기도 했다. 임동에서 지원동가는 시내버스가 있었지만 학생이 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사치스럽게 생각한 시절이었다. 웬만한 거리는 조상님이 물려주신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우린 금남로에서 줄곧 무등산 정상을 바라보며 걸었다.

헐떡이는 숨을 달래며 앞을 보니 안개 자욱한 산등성이에 하얀 목련이 부드러운 속살을 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비료 한 줌 주었을 리 만무하지만 선명하고 유연한꽃이 우릴 반기는 것을 보니 헐떡이던 숨이 금방 멈추어지고 꽃의 아름다움에 입을 벌리며 모두 감탄을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야생 백목련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심산유곡에서 홀로 핀 꽃을 보아주니 백목련 꽃은 반가움의 표현으로 목련꽃가지를 계속 흔들고 있었다.

금남로에서 무등산 정상까지 축지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한 숨에 등정했는데 새까만 안개구름이 비와 함께 몰려오는 것을 보니 무섭기도 했다. 안개의 작은 물방울에 옷이 젖어들고 무서운 안개구름의 기세에 놀라 서둘러 하산했다.

사람이 생활하는 조건에는 적당한 온습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온도가 높은 지역 사람들은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많고, 습도가 많은 지역에서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7년 전 제주시 고산 읍에서 잠시 거주를 한때가 있었다. 고산지방은 제주 서남부에 위치하며 주위에 수월 봉이 있어 맑은 날에는 아름다운 서남부 지역의 쪽빛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차귀도 주변의 올레길 도 있어서 좋았다. 인근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고 모슬포 해수욕장과 주변에 산재한 관광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 오래된 농가주택을 매입하였다.

편리성과 구조를 생각하며 새롭게 인테리어도 마쳤다. 이 정도면 만족하고 생활근거지인 광주에 들렸다가 일주일 뒤에 고산 농가에 돌아왔다. 이게 웬일일까? 생각지도 못한 곰팡이가 곳곳에 푸르뎅뎅하게 모두 번졌다. 휴지를 풀어 곳곳을 닦았다. 곰팡이는 손과 목구멍, 그리고 코와 머리까지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철석같이 달려들었다.

제주에서 잠시 쉬려고 비행기와 버스를 이용하여 찾아왔지만 4시간정도 집안을 청소하느라 혼 줄만 났다. 약 1주일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광주에 갔다 돌아와보니 이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곰팡이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당당하게 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다른 방법으로 곰팡이를 제거하기로 했다.

전에는 곰팡이를 화장지로 없애려 하니 진척도 없고 곰팡이는 날려서 여간 어려웠었다. 이젠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주방세제를 혼합했다. 깨끗한 걸레에 묻혀서 벽에 뭍은 곰팡이에 데어보니 순식간에 곰팡이는 사라진 것이다.

처음엔 4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다음엔 1시간 정도 소요되면서 편리하게 제거되었다. 그 뒤로도 생활 근거지가 광주이기에 자주 오고 갔다. 유달리 안개가 많은 고산지방에서 곰팡이와 씨름은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곰팡이에게 내가 너에게 못해보겠다고 앞 뒤발 들었다.

안개를 제거하려면 제습기를 이용해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빈 집에서 제습기만 가동하면 위험할 수 있어서 공기 순환을 위해 조금씩 창과 문을 열어 놓았다. 그 때마다 안개는 거실과 방 그리고 내부 깊숙한 곳 까지 습기가 끼어서 마른걸레를 수시로 들어야 했다.

안개와 곰팡이 때문에 고산 집을 매도하니 처음엔 서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프로필> ‘수필문학’ 수필등단, ‘소년문학’ ‘동화등단’ 단테 탄신 기념문학상 대상 수상, 제7회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광주시지회 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역임, 수필집 ‘멈춤 그리고 시작’ ‘순환의 여정’ ‘갈대의 춤’, 동화집 ‘청설모가 왕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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