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네 탓에 앞서 내 탓 수필 임지택
2018년 02월 19일(월) 18:38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로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있다. 휴대폰 충전기가 꽂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방문을 닫으려는데 어린 손자 준성이가 내 뒤를 따라 왔던가 보다.

“뒤 좀 보시고 문을 닫으셔야지요. 준성이 머리 다쳤어요.”

“그랬냐? 내 뒷머리에 눈이 없어서 그랬는가 보다. 준성아! 괜찮으냐? 아프지 않고?” 표정으로 보아선 괜찮은 듯싶었다.

어린애와 함께 뒤따라 왔으면 위험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 했어야할 텐데 그리하지 않고 내게 그 잘못을 말하는 건 듣기 좀 거북했지만 내 또한 얼마간의 잘못은 있으니 애가 머리를 다쳐 아프다고 울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그대로 넘어가려는데 오래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 한토막이 살며시 떠오른다.

어느 마을에 40대 두 부부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은 정반대였다. 한 부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는데 담장 너머 다른 부부는 시부모님과 두 아이까지 함께 살고 있지만 언제나 웃음이 넘쳐났다.

늘 싸움을 하는 부부는 어느 날 밤 담장 너머 옆집을 찾아가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많은 식구가 함께 사는데 작은 싸움 한 번 하지 않는가요?” 그러자 옆집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 집에는 잘못한 사람들만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의아한 부부가 다시 물었다.

“잘못한 사람들만 살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옆집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했다.

“가령 제가 방 한가운데 놓여있던 물그릇을 실수로 발로 차 엎질렀을 때 저는 제가 부주의해서 그랬으니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제 아내는 빨리 치우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저희 어머님은 그걸 옆에서 보지 못한 당신 잘못이라고 말하지요. 이렇게 모두 자신이 잘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니 싸움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부부 싸움을 잘하는 부부는 겸연쩍어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어 슬그머니 그 집에서 빠져나와 서로 손을 잡고 걸으면서 마주 보고 웃었다. 얼마 후 남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바로 그거야! 잘못한 건 네 탓이 아닌 내 탓이야.

아내도 덩달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든 네 탓을 따지기 전에 내 탓이 아닌가를 생각해야겠어요.”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가리기 전에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례로서 시사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 한 가정은 물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내 탓보다는 상대에게 그 과오를 먼저 묻는 게 일반 서민들의 실태이지 싶다.

나는 잘못이 없거나 적은 반면 상대는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강변하는 게 우리네 삶의 현주소가 아닐까.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이 같은 사고의 틀을 바꾸어 나갈 때 우리 사회, 우리나라는 평온한 가운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사노라면 잘한 일도, 잘 못한 일도 있을 수 있다, 이 때 누구나 시시비비를 가리려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르고 뚜렷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당사자들 상호간에 이성적인 마음의 자세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특히 성인 사회에서는 감성적 판단보다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고 이 같은 풍토가 보편화되어야 한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네 탓에 앞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몸에 밴다면 문제 해결은 물론 가정의 화목, 나아가 사회 통합에도 큰 보탬이 되리라 믿는다.

<약력> 월간 ‘수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징검다리수필문학회장 역임, 수필집 ‘누워있는 소나무’, ‘느림의 행복’, 산문집 ‘스승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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