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유와 무소유 윤태석 |
| 2018년 02월 26일(월)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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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 이 고매한 정신을 실천하기는 참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편, 이 현실을 거부하기는커녕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저급하고 속물 같은 인간들이 있다. 바로 박물관인들이고 컬렉터들이다. 여담 같지만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법정의 무소유도 몇 가지 아이러니는 있다. 스님의 주장을 더 이어가다보면, 크게 버리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됨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 말은 모순을 끌어들여 무소유의 정신을 찾아가도록 하는 역설(Paradox)의 수사(修辭)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무소유라고 하는 범인과는 거리가 있는 절제의 경지를 지나야 얻게 되는 ‘더 큰 무엇’은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소유의 또 다른 역행은 아닌지? 속물적 견해를 갖게 된다.
몇 년 전 필자가 모 잡지에 칼럼을 쓰고 있을 때의 얘기다. 거제도 앞바다에 있는 외도를 60년대 말부터 일궈 온 최호숙 선생을 소개하기위해 뵌 적이 있다. 그는 어느덧 80대 중반의 노년에 접어들어 이전에 뵈었을 때보다 한층 노약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아직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로 충만해있었다. “젊어서 너무 고생을 해 지금은 무릎이며 관절이 많이 아파요. 그래도 의욕은 늘 넘쳐나지요. 아마도 그것은 식물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욕심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은 물욕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생기가 돌고 삶의 의미도 찾게 되지요” 소유욕은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도 이어지지 않나 싶다. 세계최고의 축음기컬렉터로 박물관도 갖고 있는 S모 관장, 포항에 박물관을 설립한 화석 수집가 K모 관장, 경북 S미술관의 B모 관장, 청주에 있는 S미술관의 N모 관장 등은 꾀 중한 병에 걸렸음에도 삶에 대한 강인한 집착으로 고비를 잘 이겨내고 있다.
평생 수집한 유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립불교박물관을 설립한 모 관장이 필자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유물을 수집해보니 수집에는 ‘3·3·3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거래가 잣다보니 단골 고미술가게나 경매회사에서 외상을 주기도 하는데, 돈이 없어도 탐나는 물건이 있으면 덥석 들고 와야 안도가 되고 내께 됩니다. 그제 서야 세상을 다 얻는 것 같지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모르는 쾌감이지요.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기분은 딱 3일갑니다. 또 그에 앞서 유물을 가지고 온지 3시간이 지나면 빚 갚을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듭니다. 그렇게 모은 유물은 30점까지만 내 것 같지 그 다음부터는 소유의 개념을 초월하게 됩니다” 물욕으로 똘똘 뭉친 컬렉터의 고백은 소유의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는 듯해 법정의 정신과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많은 컬렉터들을 만나면서 필자는 ‘딸은 남 줘도 유물은 절대 뺏기지 않는다’는 나름의 신조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붕정만리(鵬程萬里)’가 떠오른다. 여기에 등장하는 붕(鵬)이라는 새는 9만리나 올라가 나는데 그 날개는 마치 하늘 전체를 뒤덮을 만큼 크고 바다를 뒤집을 것처럼 큰바람을 타고 북쪽 바다에서 남쪽 끝까지 날수 있다. 그렇게 6개월이나 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번 날개를 쉰다. 여기서 붕은 다름 아닌 절대자유와 참 행복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고귀한 것을 얻기 위한 붕의 비상도 거대한 회오리바람 즉, 조건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붕의 ‘거대한 회오리’는 박물관장이나 컬렉터들에게는 소유욕과 유물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조건이 있기에 이들이 꿈꾸는 절대자유도 있는 것이다. 소유욕과 법정의 무소유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좌표는 이 지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