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자 정책과 비전으로 나서라 박대우 |
| 2018년 04월 12일(목) 18:53 |
|
솔직히 재미있기로 치자면 선거를 따라올 재미가 있겠는가? 그 중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촌철살인의 명언이나, 상대의 허점을 헤집는 연설은 선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정치의 칠 할은 말과 글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명언을 내놓거나, 연설을 통해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故김대중 대통령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도소에서 껌 종이에 적은 편지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연설을 듣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과도 같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광주역 광장, 보라매공원 등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국민들은 열광하고, 누군가는 그 열기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호남은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를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했다.
故김대중 대통령의 독보적인 정치기반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시대의 산물이었다. 김대중은 호남, 김영삼은 영남, 김종필은 충청을 기반으로 정치적 대결과 협력을 거듭하며 한국정치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정치인 김대중의 연이은 좌절과 실패는 호남사람들의 한으로 자리 잡았고 그가 마침내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온 천지가 떠나갈 듯 승리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기대에 부응하는 정책과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이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기념비적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완성과 정치적 승리는 오롯이 호남정치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호남에서 김대중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높아질수록 호남의 정치는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를 비롯한 모든 정치적인 행위는 김대중의 승리를 위한 디딤돌이 되었고 선택은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김대중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곧 당선증’이고 소위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허허로운 우스갯소리가 떠돌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기반으로 일당독식 형태로 자리 잡은 호남의 정치지형을 비판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다당제 형태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또 다시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김대중이 흔드는 깃발의 색깔로 호남은 뒤덮였다. 그렇다보니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서 정치적 비전이나, 팽팽한 정책대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더 김대중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구호만이 어지럽게 난무했다. 경선만 통과하면 사실상 당선이 확실하다보니 상대당의 후보와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같은 당 후보끼리 치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거듭했다. 그 사이 호남의 정치적 성장은 멈춰버렸고 정치적 자산은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만 하다. 어쩜 이리도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가? 2018년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그 대상이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디를 가도, 어느 후보자를 만나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앞세우고 있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의식한 선거 전략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 도가 지나치다. 물론 정부의 출범 초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협력과 협조가 우선순위이고, 중앙정부의 정책과 예산지원도 중요하기 때문에 집권여당의 후보로서 대통령과의 정치적 관계 역시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후보자의 임무와 의무는 지역을 발전시키고,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분권이 구체화 되고 지방자치가 강화되면 지방정부의 수장으로서 중앙부처와 숱하게 부딪히고, 때로는 격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대통령과도 각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13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는 스스로의 정책과 비전으로 시민들 앞에 서야 한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뽑는 것이기에 이러한 요구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또한 성장을 멈춰버린 호남의 정치를 되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