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남겨선 안 될 리더의 언어 박진영 공감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2018년 04월 19일(목) 19:14

실언과 폭언에 관한 인터뷰를 수년째 해왔습니다. 인터뷰 중에 상대가 건넨 말 한마디로 10년을 끙끙 앓아온 이가 있었습니다. 그이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당사자를 우연히 만난 뒤 증세가 더 심해졌습니다. 정작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즐겁게 1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한심스럽다며 자괴감을 드러냈습니다. 삶을 바꾸게 할 만큼 말 한마디의 힘은 대단합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음성파일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동물이 발악하는 듯한 그런 괴성을 지르게 했을까? 물벼락을 맞은 광고대행업체 직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폭언 경험을 기억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겁니다. 분노 표현은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자신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드러냈는데도 그것이 허용된다는 느낌을 받으면 다시 하게 됩니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왜 거침없이 말할까요? 신학자 로즈메리 R. 류터 교수는 폭언을 하는 이유가 물질적 손해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려는 것이고, 셋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충동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상대를 억압하면서 자신이 힘을 가졌다고 느끼고, 그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결국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폭언이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체를 폭행한 것과는 달리 피해가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을 병들게 할 만큼 강력합니다. 우선 욕설이나 폭언을 들으면 심한 모멸감을 갖게 됩니다. 좌절감도 커지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으로 인해 분노를 억눌러야 합니다.

폭언을 들은 우리 몸도 마음 못지않게 분주해집니다. 폭언에 즉시 반응하는 교감신경계는 활성도가 높아지고,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마구 분비시킵니다. 코르티솔은 여러 질병에 걸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면역기능도 떨어뜨립니다. 균형이 깨지고 맙니다. 잠도 못자고, 밥도 먹기 힘들게 됩니다. 위산과 펩신이 너무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또 신경이 날카로워 질 때 나오는 베타파가 높아지면서 주의가 산만해지고 사고능력과 행동능력이 낮아져 섬세한 일을 할 때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세인트메리대 연구팀이 한 실험 결과를 보면 상사에게 폭언을 들으면 혈압이 비이상적이 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이나 충격적인 일을 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폭언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잘 잊혀지질 않습니다. 상처를 주는 말은 편도체라는 뇌의 회로에 오랫동안 저장할 자리를 만들고 그 깊은 곳에서 숨어살다가 틈만 나면 머릿속에 마구 떠올리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사라집니다. 잘 소독해주고 감싸면 자연치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낫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걸립니다.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누군가 잘못 건드리면 덧나기까지 합니다. 반창고 크기가 상처보다 커야 하는 것처럼, 그것을 치유하는 데는 단순한 사과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제대로 사과한 게 아니겠지요. 타인의 말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광주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막판까지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후보자들의 입모양과 표정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광주시민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정책으로 광주를 이끌어갈 비전을 듣고 싶은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억합시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영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