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부활한 버려진 것들 30년 만에 첫 공개 우제길 화백 흔적展 시리즈Ⅰ ‘판넬 위 빛을 올리다’…6월30일까지 우제길미술관 고물상·쓰레기더미서 재료 발견 80-90년대 미공개 작품 17점 엄선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2018년 04월 19일(목) 19:15

우제길 화백이 오는 6월30일까지 우제길미술관에서 제94회 개인전 ‘판넬 위 빛을 올리다’를 연다. 사진은 이번 전시 전경. /우제길미술관 제공

“1980년 5·18 이후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공간에서 구한 재료들이에요. 길바닥에 내팽겨져 비바람을 맞고 오랫동안 방치된 것들이죠. 1980-1990년대 힘들었던 당시 광주사람들의 생활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의 작품들을 보면서 당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열정 넘치게 작업에만 충실했던 제 모습이 떠오르고, 또 그립기도 하고요.”

광주를 대표하는 추상화가이자 ‘빛의 작가’로 통용되는 우제길(76) 화백은 19일 자신의 전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광주 동구 운림동에 자리한 우제길미술관(관장 김차순)은 오는 6월30일까지 우 화백의 제94회 개인전을 개최한다. ‘흔적’을 대주제로 한 우 화백의 작품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판넬 위 빛을 올리다’를 주제로 한다.

우제길 作 ‘ work87’ /우제길미술관 제공

전시에선 우 화백의 30년 전 작업들로, 이제까지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17점의 작품을 엄선해 선보인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우 화백 특유의 그림체가 묻어나는, 정형화된 캔버스 작업이 아니다. 30년 전 작업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새롭고 실험적이다. 특히 이 모든 작품들은 ‘버려진 것’에서 출발했다니 더욱 눈길을 끈다.

“캔버스 작업에서 벗어나려고 작업실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웃거렸죠. 그러던 중 고물상, 쓰레기더미에서 대형 박스를 발견하고는 예술적 상상력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금당산 인근 실개천가에서 집 없는 이들이 사용하던 대형 박스는 외국에서 물건을 보낼 때 사용한 듯한 것들이었어요. 물건을 보낸 사람, 국제 운송회사, 수령인의 이름 등이 흔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눈비를 맞고 오랫동안 방치된 그 박스들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죠.”

대형 박스 뿐 아니라 버려진 판넬들, 발송용 날인이 찍힌 것들, 못자국, 철판 조각들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것들로 우 화백은 당시 다양한 작업을 했다.

이후엔 광산구 군부대 옆 오물처리장에서 발견한 탄약박스, 운림동 액자공장에서 구한 것들 등 수많은 버려진 것을 구해다, 불교의 탱화기법을 떠올리며 분가루와 마포천을 입혀 독특한 빛 작업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30년 전의 상황과 작가로서의 열정이 떠올라 정말 뜻 깊고 그리웠습니다. 그때의 작업들을 관람객들이 감상하면서 버려지고 내팽개쳐진 것들이 갖는 가치를 떠올려봤으면 합니다.”

우제길 作 ‘ work76-5a’

한편, 우 화백은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달의 작가전’,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인기작가상, 2009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현대미술가 100인’ 선정, 2013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 ‘빛을 그려온 예도’ 등을 열며 광주를 대표하는 추상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94회의 개인전과 781회의 단체전을 가진 바 있다.(전시 문의 062-224-6601)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