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진미륵과 브라보 콘 윤태석 |
| 2018년 05월 28일(월) 19:10 |
|
논산 관촉사는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石彫彌勒菩薩立像)’이 바른 이름인 이 미륵은 서기 968년에 혜명(慧明)이 관촉사를 창건할 때에 함께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형태의 설화를 화석처럼 간직한 채 불국토를 꿈꾸며 지금도 당당히 서있다. 이중 한 갈래의 설화를 보면, 어떤 여인이 반야산(般若山, 논산 취암동과 관촉동 사이에 있는 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는데 아이울음 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아이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이를 접한 조정에서는 그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된다. 혜명은 100여 명의 석공과 함께 970년부터 1006년(목종 9)까지 불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커 세우지 못하고 걱정만하고 있던 어느 날, 사제촌(논산 부적면에 있는 마을)에서 두 동자가 세 덩어리의 진흙으로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유심히 보니 평평한 땅 바닥에 하단을 세우고 하단상부까지 비탈지게 모래를 쌓아 중간몸체를 얹더니 다시 모래를 더해 두상 부를 올리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 방법을 터득한 혜명은 마침내 똑같은 방식으로 불상을 세울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자는 혜명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化現)한 것이었다. 불상이 서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을 씻겨 주었고 상서로운 기운이 삼칠일(21일)간 서렸으며, 두 눈썹사이의 옥호(玉毫)에서는 섬광이 발해 사방을 비쳐주었다. 그 빛을 좇아 달려온 중국 승려 지안(智眼)이 기도를 하며 보니, 그 빛이 마치 촛불과 같아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국내 최대 규모(18.12m)를 자랑하는 은진미륵이 마침내 지난 4월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당대 전형(典型)을 이형(異形)의 대범함과 파격으로 재해석했고, 후삼국 이후 이 지역에 폭넓게 퍼져있던 미륵신앙의 일면을 잘 담아내었다는 점이 재평가된 때문이다.
필자는 이 석불을 40여년 전인 초등학교 3학년(1975년)때 처음 친견했다. 그 앞에서 두 살 터울 남동생과 쌍둥이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흑백사진은 세월만큼이나 발한 채 앨범에 잘 간직되어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또 거기가 어디였는지도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미술사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뒤적이다 눈에 들어온 미륵불은 마치 어느 TV 방송의 ‘응답하라 0000년’처럼 타임머신에 태워 필자를 과거로 돌려주었다.
교실이 두 칸 밖에 되지 않는 분교에서 공부한 필자와 동생은 담임선생님이 같은 분이었다. 윗마을이 고향이셨던 선생님은 필자의 아버지와 동년배 친구로 다른 친구 분들과 계를 조직해 부부동반 여행을 다니시곤 했다. 따라서 선생님도 함께하시는 여행은 나와 동생도 합법적인 결석이 가능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은진미륵도 그래서 보게 되었다. 불교를 믿었던 어머니는 그곳에서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불전 함에 넣고, 농사일로 수세미처럼 변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셨다. 미륵불의 머리는 몸체보다도 커보였고 큰 코와 길게 늘어진 귀, 야릇한 눈매는 어린 눈에도 참 괴이해 보였다. 어른들과 단체사진도 찍고,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버스에 올랐었던 것 같다.
그동안 여산휴게소를 들릴라치면 어렸을 때 이곳에서 브라보 콘을 사달라고 조르다 엄마한테 혼만 났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나곤 했었다. 마침내 관촉사에 들렀던 사실을 알아내고는 잊어버린 기억의 옴니버스 필름을 찾아 미완의 흑백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1년 늦가을 어느 날, 필자처럼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아이와 역시 두 살 터울인 둘째를 데리고 관촉사를 찾았다. 한 세대 전,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말이다. 동생과 어깨동무했던 그 자리에 나란히 선 아이들의 천연함이 화현한 동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산 너머 석양을 등지고 내려오는 길, 지금은 불국토에 계실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손을 끌며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던 아이들의 손에 브라보 콘 하나씩을 들려주었다. 은진미륵이 준 우리 집의 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