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말이요, 진상조사위” 나의갑 |
| 2018년 07월 15일(일)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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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칠꺼칠한 시간이 그의 행색 위로 땟국같이 흐르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그, 6월26일이 오후에 기대어 있을 때였다. 들어서면서 명패를 본 듯 “관장님, 맞지요?” 했다. 비틀거리는 말소리에도 한순간에 자빠져버린 날의 시간이 감겨 있었고, 부실한 걸음걸이에도 그 봄의 시간이 묻어 있었다. 1980년 5월20일, ‘택시항쟁’에 참여했고, 공수부대가 그의 머리를 진압했다. 경찰봉보다 더 긴, 긴급 공수된 진압봉이 그를 순식간에 장애로 만들었다. 택시도 놓고 광주도 놓았다. 한 차례 더 보상 심사가 있을지 모르니 시청으로 가 이름자와 전화번호를 남겨두라고 했다. 돌아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누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목소릴 잡아 내렸다. “나 요러케 잘못했소, 하고 비는 사람, 아직 한 사람도 안 나왔지라우? 사람을 요러케 못쓰게 만들어놓고서….”
얼마 안 있다, 그가 불러나 낸 것처럼, 그의 생을 송두리째 고장내버린 국군기무사령부가 왔다. 나잇살을 먹어도 그것들의 하는 짓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뒤에 숨어 ‘촛불’을, ‘세월호’를 작업했다. 작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 믿고 위수령 발령→계엄령 선포를 계획했다는 거 아닌가.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공수부대 1400명 등 무장병력 4800여 명을 동원해 발포까지 하려 했다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5·18은 누구의 작품인가. 기획한 이들이 따로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광주는 선택 당했나. 5·18연구자들 가운데는 광주의 ‘진실 찾기’는 ‘선택 당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12·12로 간단히 군권을 허리에 찬 음모집단(신군부)이 다음 표적으로 가늠쇠 위에 무엇을 올려놓았겠는가. 당위 같은 수순으로 ‘정치권력’을 올렸겠지.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고 거저먹을 수는 없고, 뺏기 위한 강한 명분을 국민들 앞에 던져줘야 하는데, 광주가 눈에 들어왔음일 것이고, 거기 ‘김대중’이 있지 아니한가. 그 사람과 광주 사이를 도구 삼으면 정권찬탈에 합격할 것이란 괘가 나온 것인가. ‘일어선 광주’를 ‘그 사람 짓’으로 몰아가니, 신군부가 소원하던 5·18이 되었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오는 9월14일이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장관급을 수장으로 뜬다. 역사의 일을 조사해 본 사람이면 “진상조사위가 단단하지 않으면 단단한 조사에 이르지 못한다”고 걱정된다는 투로 말한다. 조사를 총괄 관리하는 위원들도 단단하고 실지로 조사에 임하는 조사관들도 단단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단단함을 일일이 무슨 수로 검증한단 말인가. 위원들의 경우 광주 현지 사람들과 하루쯤 만나 이것저것 5·18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지, 이런 생각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공모로 뽑히는 조사관한테는 광주가 촘촘히 짜 만든 ‘진상조사 항목별 핸드북’으로 사전학습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안 그러면 준비하다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진상조사에 지름길은 있는가. 그동안 그 길을 잘 안 가서 그렇지, 탁 트인 길이 아주 없지는 않다.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와 광주 505보안부대’에 그 길이 있다. 보안사와 505보안대를 두들겨야 정답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다. 보안사 두령이 누구냐 하면 전두환 사령관 아닌가. 입속의 혀처럼 충성하는, 그리고 탁월한 ‘공작재주’를 지닌 3인을 직접 빼내 광주로 내려 보낸 사람도 전두환이었다. 보안사 기획조정처장 최예섭 준장, 특수임무 홍성률 대령, 수사 베테랑 최경조 대령이 그 ‘5·18 트리오’다. 최예섭을 사실상의 505보안대장으로, 홍성률을 현지 공작팀 총책으로, 최경조를 전남합동수사단장으로 임명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으로, 505보안대를 ‘광주사태 현장지휘소’로 활용했다는 거다. 이 가운데 보안사 요원 17명과 함께 광주에 온 홍성률은 505보안대 보안대원, 경찰 정보요원, 중앙정보부 전남지부 정보요원 등으로 ‘공작팀’을 꾸려 유언비어 생산 및 유포, 독침사건 등 프락치 심기, 시위대의 폭동화 공작 등의 지하활동을 한 흔적들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과 5·18 잇기 작업의 중심에는 최경조가 있었고, 505보안대 대공과장 서의남 중령은 홍성률과 최경조의 귀한 조력자였다.
그 서의남이 얼마 전 TV에 나와 “계엄권이 시민들을 쏴 죽였다고요? 말짱 거짓말이에요. 그건 (2007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이미 밝혀진 사실…. 홍경래도 자기 나름으로는 정의가 없나? 그러나 그것도 정부에, 정부의 군에 의해 진압돼버렸기 때문에 난이야, 난”이라며, 국민을 가르친 바 있다. 진상규명작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은 서의남의 말을 ‘설건들면 물린다’는 쪽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안 물리려면 공부밖에 피할 길 없다.
전라도땅에는 ‘예말이요’가 살고 있다. 표준말로 하면 ‘여보세요’인데, “예말이요, 진상조사위! 내말 좀 들어보시오” 하고 미리서 부른 걸 이해해 달라. 감자넝쿨을 뽑으면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듯, ‘보안사와 505보안대’라는 5·18넝쿨을 클릭하면 ‘새로운 전두환’과 함께 그 졸개들이 줄줄이 물려 나올 것이니, 제발 포인트를 잊지 말라는 주문을 해두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