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바다 속엔 선경이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3)

2018년 07월 17일(화) 19:04

鏡浦臺(경포대)
방촌 황희

경포대 물결에 초승달은 비치고
차가운 소나무 안개를 가리는데
누대에 대나무 가득 바다는 선경이네.
潑潑鏡捕涵新月 落落寒松鎖碧煙
발발경포함신월 낙락한송쇄벽연
雲錦滿地臺滿竹 塵寰亦有海中仙
운금만지대만죽 진환역유해중선

강릉 경포대는 많은 사람들이 절경을 찾았던 곳이다.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동해를 가르면서 떠오르는 해의 찬란함은 이루 말로 형용하지 못했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 해 꼬리가 떨어지는 모습을 탯줄을 달고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까지도 연상했다는 시상에 탄성을 자아낸다. ‘경포대 물결 출렁거린데 초승달이 곱게 비치고, 늘어진 차가운 소나무가 푸른 안개를 가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풍진 세상에도 바다 속에는 선경이 있구나’(鏡浦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로 조선 전기의 재상이다. 국가의 법이 혼란스러운 것을 수정 보완해 ‘경제육전’을 간행했던 인물이다. 태종은 물론 세종의 가장 신임을 받았던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또한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청백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경포대 물결 출렁거린데 초승달이 곱게 비치고 / 늘어진 차가운 소나무가 푸른 안개를 가리네 // 비단 구름 땅에 가득하고 누대엔 대나무 가득하니 / 이 풍진 세상에도 바다 속엔 선경이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경포대에서]로 번역된다. 경포대는 강릉시 저동에 소재한 관동8경 중 하나다. 알려진 절경처럼 역사적인 숨결이 숨겨져서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시심을 일궈냈다. 청백리로 알려진 시인도 이곳을 찾아 발동되는 시심을 억제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시인이 경포대를 찾았을 때는 아스라이 초승달이 비치면서 멀리는 바다가 연해져 있었고, 소나무에 달이 걸렸다는 절경을 더했겠다. 경포대 물결이 출렁거린데 초승달이 곱게 비치고 늘어진 차가운 소나무가 푸른 안개로 가리었다고 했다. 절경을 구경한 시인의 눈에 비친 안개가 소나무를 가리며 바다의 진풍경을 연출했다는 선경의 시상을 그려냈다.

화자의 눈에 비친 누대에는 대나무까지 가득해 풍취를 더하고 있는 경관과 함께 어려운 세태에도 볼만한 선경(仙境)이 있음을 예찬하고 있다. 비단 구름이 땅에 가득하고 누대엔 대나무 가득한데, 이 풍진 세상에도 바다 속엔 선경이 있다는 시심 주머니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서 너를 넘어뜨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아옹다옹하는 이 풍진 세상에도 선경이 있다는 것을 느낀 듯했으리라.

※한자와 어구

潑潑: 출렁거리다. 鏡捕: 경포대. 涵新月: 초승달이 곱게 비치다. 落落: 늘어지다. 寒松: 차가운 소나무. 鎖碧煙: 푸른 안개를 가리다. // 雲錦: 비단 구름. 滿地: 땅에 가득하다. 臺滿竹: 누대에는 대가 가득하다. 塵寰: 풍진 세상. 亦有: 또한 -이 있다. 海中仙: 바다 가운데 신선.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