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자네 일출 모습일랑 반드시 보시구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5)

2018년 07월 31일(화) 18:56

送僧之楓岳(송승지풍악)
독곡 성석린

금강산 1만2천봉 높낮이 다르지오
여보게, 일출 모습 자네는 꼭 보시게나
봉우리 어느 것에서 맨 먼저 붉어지는지.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일만이천봉 고저자부동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군간일륜상 하처최선홍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사계절 이름에서도 묘미가 있지만, 1만2천봉이라는 데도 있다. 누구나 이런 절경에 혹해 구경하려고 한다. 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어느 절경이 금강산의 오묘함과 비견할 수 있으리. 시인은 금강산으로 관광을 떠나는 스님에게 일출의 장관을 보고 어느 봉우리의 먼저 붉어진 연출이 펼쳐지는지 보라했다. ‘기이한 금강산의 1만2천 봉우리는, 봉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고 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여보게, 자네 일출 모습일랑 반드시 보시구려’(送僧之楓岳)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수졸로 나갔다 풀려나 창원군에 봉해졌고 단성익조좌리공신의 칭호를 받았으며 정당문학으로 임명됐던 인물이다. 공민왕 때 양광도 관찰사로서 각 고을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는데 앞장섰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기이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는 / 봉 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고 하는데 // 여보게, 자네 일출 모습일랑 반드시 보시구려 / 어느 봉우리가 맨 먼저 붉어지는가를 알 수 있을 걸세]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금강산으로 가는 스님을 보내며]로 번역된다. 아주 평이한 시어로 금강산의 일출 장면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금강산을 가 본 적이 없는 성석린이 금강산에 사는 스님에게 산의 승경(勝景)에 대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역설적이라 할 수 있겠다. 금강산의 모습에 자신의 원대한 기상을 투영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시인의 달관적인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시상의 그림을 차곡하게 그리는 모습을 본다. 금강산 1만2천봉은, 봉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는 선경에 보지도 않고 말만 들어서 아는 경치를 그렸다는 점이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은 시어로 그림을 그린다는 실상을 보는 것 같다.

화자는 시적 대상자에게 가만히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한 마디를 던진다. [여보게, 자네 일출 모습 꼭 보시구려 / 어느 봉우리가 맨 먼저 붉어지는가를]이라는 후정을 다독거린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도를 터득함에 선후와 심천이 있으니, 사람의 성품이 높고 낮음에 달려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喩得道之有先後深淺 / 由人性之有高下)”라 했으니 득도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한자와 어구

一萬: 1만. 二千峰: 2천봉. 高低: 고저, 높낮이. 自: 자연히, 스스로. 不同: 같지 않다. 곧 1만2천 봉이 다 다르게 생겼다. // 君: ‘그대여!’ 혹은 ‘여보게!’ 쫌으로 호칭하는 말. 看: 보다. 日輪上: 해가 위로 오르다. 해가 솟아오르다. 何處: 어는 곳, 最: 가장, 先紅: 먼저 붉어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