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꽃이 되려고 이선근 시

2018년 09월 10일(월) 19:01

한 줌의 재로 남았다
억겁의 인연을 비우니

눈이 짓무르도록 붉어지는 가을
이별의 아픔은 햇살을 가른다

흙에서 시작된 생명이라
흙으로 보낸다

지난했던 세월 가득 묻은 한지함
몇 년 동안 녹고 녹아
살면서 피우지 못한
꽃이 되려고
마지막 인연의 끈도 거둬간다
아픔 없는 별을 찾아

무서리를 견뎌낸 국화도
한 줌의 재에서 피어난 것을.


<해설> 한 생명과의 작별을 꽃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어쩌면 슬프고 가슴 저미는 순간을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절제된 목소리로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씨앗이 어두컴컴한 흙 속에서 견디고 인내하며 찬란한 꽃을 피우듯이 죽음을 생명으로 치환하고 있다.
<약력> 문학춘추 작품상 시 당선, 문학춘추작가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꽃이 되려는 조건’ 외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