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애하는 마에스트로 정하나PD의 보통날

2018년 11월 05일(월) 18:45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그런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냥 마냥 고마워서, 또는 미안해서, 깊은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어서, 왠지 모르게 등등. 나에겐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 바로 김홍재 지휘자님이다. 이것은 나의 가장 친애하는 마에스트로, 김홍재 지휘자님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이다.

김홍재 지휘자님을 처음 가까이에서 뵈었던 날이 생각난다. 광주시향을 맡기로 결정을 하신 후 사모님과 함께 처음 광주를 방문 하셨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쯤, 임명장을 받으러 오셨던 날이었구나. 나와는 멀찍이 기자 분들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계시던. 당시만 해도 김홍재 지휘자님은 나에게 완벽한 타자였는데 이렇게 그분에게 동화돼버릴지 그땐 전혀 알지 못했다.

처음 광주시향에 오시고 이곳저곳 언론사에서 광주시향에서의 계획을 묻는 인터뷰가 쏟아졌는데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 1년 정도 지휘를 하고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며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미루셨다. 기자 분들에겐 반복된 거절을, 지휘자님껜 반복된 제안을 해야하는 주선자로서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몇 달 뒤 드디어 한 방송매체와 인터뷰가 어렵게 성사됐다. 30초 정도의 뉴스 리포트에 인터뷰가 길어야 10초쯤 나가는 형식이었는데, 지휘자님은 답변을 미리 적고, 소리 내어 연습한 뒤 내용을 거의 외워오셨다. 본인의 한국말이 서툴다고 생각하시어 인터뷰에서 의도가 왜곡되지는 않을지 항시 걱정이신 것 같았다. 한 줄 장담이나 자랑 보다는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으신 마음도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행운이었다. 지휘자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은. 공항에 마중을 가고, 관사에 문제가 있을 때 살피러 가고, 지휘자님 컨디션에 맞춰 점심메뉴를 알아보고. 이것은 기획자의 삶이 아닌 비서의 삶인가 하겠지만 예술가의 안위를 살피는 것도 기획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나는 내 일이기도 하거니와 지휘자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기에 기꺼이 하는 일들인데, 그분은 어느 무엇도 당연히 받으시는 법이 없다. 공항에 마중을 나가면 ‘혼자가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관사에 문제가 있어 살피러 가면 ‘(미안한 얼굴로)와주어 고맙습니다’, 식당에서는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시며)잘 먹었습니다(하고 늘 본인이 계산을 하신다)’.

일본어로 ‘하나’는 ‘꽃’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특유의 억양으로 ‘하↑나→’하고 불러주실 때마다 무척 기분이 좋았던 것, 사람들에게 나를 ‘내 딸이야~’하고 소개하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던 것, 일본에 다녀오실 적엔 항상 직원들과 나눠먹으라고 일본과자를 사다주시는 것, 높고 힘이 모이는 자리에 있는 것보다 지근거리 직원들과의 막걸리 한 잔을 더 즐거워하시는 것. 지휘자님과 함께한 지난 2년간 자랑하고 싶은 잔잔한 일화들이 쌓여왔다. 이런 소소한 일화들로 가족에게나 느낄 법 한 애틋 애잔한 마음을 느낀다니 누군가는 내게 ‘좀 오버한다’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분을 향한 나의 마음이 그러하니 어쩌랴.(지휘자님과 나의 본가가 같던데 어떤 핏줄적인 것일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적이 있긴 하다.)

이쯤 되니 정직하고, 따뜻하고, 배려 깊은 어느 회사 부장님과의 일화 같기도 한데 그런 그 분이 바로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라는 점. 지휘자님의 음악은 나에게 뭐랄까, 맞다! 믿음이 간다. ‘믿고 듣는 김홍재.’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그 분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본인을 포장하고 과시하는 데에도 영 젬병인 분이라 그분의 음악에도 똑같이 관객을 현혹하는 속임수나 과시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거기에 깨끗한 마음이 담겼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분의 음악은 안심이 된다. 지휘자님의 음악에선 단정하고 깨끗한 기운이 전해진다. 마치 그 자신처럼.

한 번 공연을 위해 여러 번 연습 지휘를 하고, 본무대를 하고 나면 200g에서 300g 몸무게가 빠진다고 하셨다. 젊었을 땐 1-2㎏이 빠졌다가 공연이 없는 기간에 다시 회복이 되곤 했다는데, 이제는 몸무게가 빠지고는 다시 채워지지 않고 그걸로 끝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뵈었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지셨다. 원래 입던 연미복이 헐거워져 이번엔 연미복을 새로 맞추셨다. 저 사람이 저렇게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을 토해내고, 자기는 점점 소멸해 버리는 것 아닐까? 혼자서 참 이상한 상상을 한다. 그리곤 슬퍼진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마음을 줘 본적이 있던가? 참 생각할수록 신기한 분이시다.

글쓴이 정하나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영문과 졸업,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원주문화재단·한솔문화재단에서 근무 했으며 현재 광주시립교향악단에서 공연기획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