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제8요일” 황인숙 |
| 2018년 11월 05일(월)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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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찜통더위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며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11년 만에 찾아온 최고의 무더위로 우리에게 몇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런 무더위의 끝자락에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가 합동으로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혔다.
주요내용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에 걸쳐 전체 10대 과제와 24개 세부과제로 구성해 장애의 조기진단, 방과 후 돌봄과 주간활동 서비스, 부모 대상의 자녀진로 상담과 코칭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커뮤니티케어 구축을 통한 거점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를 권역별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정부의 발표는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당사자를 보살피는 가족의 어려움까지도 함께 보듬어 가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방안을 내놓아 사회복지분야의 전문가라고 자타의 공인을 받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느끼며, 아주 오래전 큰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았던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제8요일’은 밖에서는 성공한 세일즈기법 강사로 불리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못하고 가족과 별거중인 ‘아리’와 다운증후군으로 절대적인 희생과 보호를 해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요양원에서 생활하다 형제들을 찾아 나선 ‘조지’의 우연한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는 ‘아리’는 식당바닥을 구르며 떼를 쓰고 신발을 가지고 싶다고 매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트럭운전수에게 손가락 욕을 해 ‘아리’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도 자기가 한 행동을 모른척하는 ‘조지’가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워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조지’의 모습을 보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순진한 영혼을 가진 ‘조지’에게 점점 매료되어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다.
‘조지’ 또한 웃음기라고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아리’의 무뚝뚝한 표정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가족들에게 거절당하는 ‘아리’의 무기력한 모습에 오히려 그를 위로하면서 둘은 친구가 되고 함께 ‘조지’의 형제들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조지’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입장만을 이야기 하며 그를 거부하고, 형제들로부터 외면 받는 ‘조지’의 모습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아리’는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며 우연히 찾은 해변에서 불꽃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가족에게 전달하는데 진심이 전해지기라도 한 듯 멀어졌던 아내와 딸들에게 연락이 오고 그는 소중한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조지’는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금지로 먹지 못했던 초콜렛을 마음껏 먹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환상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 ‘조지’는 우리에게 말한다. 첫째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태양은 눈부시다. 둘째날 신은 바다를 만들었다. 바다는 발을 적신다. 바람이 간지럼을 태운다. 셋째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풀은 자를 때 운다. 그럴 땐 다정한 말로 달래줘야 한다.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된다. 넷째날 신은 소를 만들었다. 소는 숨 쉴 때 뜨거운 김이 나온다. 다섯째날 신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안타면 날아가는 게 보인다. 여섯째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남자, 여자, 아이들. 뽀뽀할 때 따갑지 않아서 난 여자와 아이들이 좋다. 일곱째날 신은 쉬기 위해 구름을 만들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구름 속에서 이야기가 보인다. 여덟째날 신은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한 뒤 ‘조지’를 만들었는데 보기에 참 좋았더라.
영화가 끝나고 나는 복지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펴 주신 부모님의 부재와 형제들의 외면에 처한 장애인들에게 복지는 무엇일까? 거창한 정책이나 제도, 교육이 과연 그분들이 원하는 복지일까? 솔직히 장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와 많은 이웃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만 생각해 왔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매 순간 순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식사와 다과를 즐기며, 친구와 어울려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될 때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
지난 9월 12일 정부에서 발표한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은 발달장애인의 출생 이후부터 전 과정을 생애주기별로 계획을 세워 지원하겠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정책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제8요일’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