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거리에서 수필 최미경

2018년 11월 12일(월) 18:20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던 어느 아침, 저만치에 있는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천천히 정지선에 정차하였다. 이른 시각에 직장으로 학교로,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쳐져있던 어깨에 생기가 돈다. 이런저런 나만의 상상을 하며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몸이 불편한 젊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이미 다 건넜고 곧 신호등도 바뀔 차례인데 그 청년은 반 정도밖에 건너지 못한 상태였다. 심하게 몸을 흔들며 길을 건너는 청년. 깜빡이는 신호등에 내 마음까지 초조해지던 그때,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급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몸이 불편한 청년에게로 가더니 한쪽 팔을 끼고 청년을 부축했다. 그리고 신호대기 중인 차들을 향해 목례를 하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신호 대기 중인 운전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신호가 바뀌었지만 어느 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청년은 부축을 받아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고 그제야 차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함께 건너 준 중년의 남자도 정지선에서 기다려준 운전자들도 모두 동화 속 착한 주인공처럼 생각되었다.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가끔 회상해 보는데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경제가 어려워져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접하면 하루가 멀다고 끔찍한 소식,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기능이 사건 사고의 브리핑 기능으로 전락하여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꽃들은 앞 다투어 피어난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사람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밀짚모자 하나 눌러 쓰고 열심히 풀베기하는 경비 아저씨, 텃밭에서 딴 상추를 바구니마다 수북하게 담아놓고 길가는 사람과 눈을 맞추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허리 굽은 할머니도 만나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학원으로 향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저녁 준비를 위해 바삐 걷는 주부도 만난다. 그리고 간혹 그날과 같은 감동적인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아 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을 수시로 일깨워 줄 것이다.


<약력> 대한문학등단, 광주문인협회 회원, 무진주수필문학회 회원, 저서 ‘찻물을 끓이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