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15,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백성들의 탄식소리 하늘에 사무치고

2018년 11월 13일(화) 18:48

/그림:선성경

말머리를 달려 나주를 향하는 정도전의 눈에 헐벗은 몸으로 배고픔에 지쳐 우는 어린아이들의 가여운 모습이 맨 먼저 들어왔습니다.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참상이었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달라붙어 개미처럼 일을 했습니다요.”

“아무리 일을 해도 가뭄이 심해서 도무지 목구멍에 풀칠할 것이 없습니다요.”

백성들은 관리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통사정을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서운 채찍뿐이었습니다.

“그깟 사정 내 알바 아니니 빨리 소작료를 가지고 오지 못할까?”

“아악! 나 죽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요. 곳간을 한번 뒤져 보세요.”

“아버지! 엉엉엉···.”

곡식 한 톨 없는데도 소작료를 걷으러 나온 자들의 행패를 온 몸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모습은 조정에서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훨씬 더 비참했습니다.

백성이 하늘처럼 여기는 것은 /오로지 밭에 있을 뿐이다.

몇 뙈기 안 되는 밭을 1년 내내 갈아봤자 /부모와 처자를 먹여 살릴 만큼도 안 되는데

소작료를 걷는 자들은 이미 와 있다./ 밭주인이 한사람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적은 곳은 서너 명이요. 많은 곳은 일곱 여덟 명이라./어찌해보려 해도 할 수 없으니

누가 기꺼이 소작료를 갖다 바칠 것인가./밭의 소출로는 소작료도 다 바칠 형편이 못되는데

어디에서 이자를 낼 것이며 무엇으로 부모를 봉양하고/처자를 먹여 살릴 것인가.

백성의 곤궁함이 이런 지경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는 자가 이토록 처참한 백성들의 처지를 모르고 살았으니….”

한 때 고려 조정의 관리였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아! 아! 고려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단 말인가?”

정도전은 귀양지 나주를 향하면서 그동안 개경에서는 보지 못했던 백성들의 참혹한 처지와 곤궁함에 대해 탄식을 했습니다.

“아이고! 부자의 땅은 강과 산을 경계로 하는데 우리 같이 농사짓는 가난한 백성은 배를 곯고 피죽도 못 먹어 죽어갑니다요.”

“농사를 지어야 할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으니 이 나라가 어쩌려고 이러는지.”

죽어가는 백성이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피토하듯 내뱉는 말은 정도전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이런 나라는 차라리 얼른 망해야 되요. 얼른.”

“암요···. 얼른 엎어져야 되요.”

“그래도 공민왕께서 살아 계실 때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아이고···. 아이고···.”

곳곳에서 수탈을 당하는 백성들이 울부짖는 이런 광경은 정도전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조정에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결코 이 백성들의 삶을 몰랐으리라.”

막연하게만 생각 했던 백성들의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래, 언젠가 이 나라를 바로 세울 날이 있겠지, 내 그 때는 반드시 이 불쌍하고 가련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올바른 정치를 하리라.”

정도전은 훗날을 기약하며 다짐했습니다. 정도전에게는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귀양길이 오히려 백성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의미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충청도 땅은 산간 지방이어서인지 더욱 백성들의 피해가 심각하구나.”

앞뒤를 둘러봐도 첩첩산중인 충청도 지방의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어서 소작료를 못내놓겠나.”

“아니고 나으리, 올해 같은 모진 흉년에 무슨 곡식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희들의 목숨을 거두어가세요.”

도무지 쌀 한 됫박이 있을리가 없는 백성들은 죽기를 각오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들이 아주 죽어봐야 소작료를 가져 올려나. 에잇.”

고을마다 소작료를 받아내려는 자들과 한 됫박이라도 숨기려다 발에 차이고 얻어맞는 백성들의 탄식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아이고, 나리 저희가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요. 이것은 내년에 종자로 쓸 곡식입니다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니 얼른 그 바가지 이리 내놓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