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의 역사 동화] 16,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유배지 나주 땅에서 |
| 2018년 11월 14일(수) 1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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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땅이 가까올수록 정도전은 참으로 평야가 비옥하고 넓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경을 떠나 귀양지로 내려오면서 보아왔던 것과 나주 백성들의 삶도 헐벗고 궁핍한 모습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품격과 예의가 있어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 산이 그 명성 높은 금성산인가? 저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식산일까? 옳지, 저기 바다 옆의 작은 산은 배를 메어둔다는 그 베메산 인가 보다.”
정도전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기 전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나주를 군사적 요충지로 삼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주가 예사로운 땅이 아님을 여기 와서야 새삼 느끼는구나.’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해온 지도는 이미 너덜 거렸습니다. 지도를 살피면서 여기 저기 나주의 산과 들, 바다의 지형을 살펴보면서 새삼 감탄을 했습니다. 정도전은 괴나리봇짐 에서 붓을 꺼내들어 나주 동점 문에 올라서서 느낀 강렬한 감상을 한편의 시로 적어 넣었습니다.
‘확실히 다르다. 이곳 나주는···.’
길을 재촉하여 조정에서 명한 거평부곡 유배지에 도착한 그는 우선 황연이라는 사람의 집 방 한 칸을 빌렸습니다.
“집이 비좁아 많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황연이라는 사람은 그저 농사짓는 농부임에도 사리에 밝고 인정이 많았습니다. 궁핍한 살림에도 날이 갈수록 귀찮은 기색은 커녕 오히려 더 지극한 정성으로 정도전을 돌보았습니다.
“술이 향기롭게 익었습니다. 한 모금 향이라도 맡아 보시지요.”
“아니, 이 흉년에 무슨 곡식으로 이리 향긋한 술을 빚었단 말씀입니까?”
“나리께서 요즘 통 바깥출입을 않으셔서 마을 사람들이 많이 염려하고 있습니다요. 어서 드시지요.”
“이런 감사할 데가···.”
귀한 안주까지 가져와 술을 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그의 모습은 평생을 농사만 짓는 사람임에도 오히려 어느 선비보다 절도 있고 품위가 있었습니다.
“나리, 부디 건강하게 계시다가 개경으로 가셔야 합니다.”
“허허, 이리 부족한 사람을 지극한 예로써 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올 가을에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저 앞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작은 초당을 하나 지어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거처가 비좁아 고생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이렇게 고마울 데가….”
“평소 늘 말씀하시던 두보의 초당처럼 그렇게 조그맣게 지어 드릴 테니 마음껏 시도 읊으시고 글도 쓰시고 평안하게 기거 하시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 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거평부곡 소재 동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쳐 작은 초사를 지었습니다.
“에헤야 데야, 자 이제 새끼줄 올라갑니다.”
짚동가리로 지붕을 잇는가 싶더니 이제 새끼줄로 그 위를 단단히 묶는 작업을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해내고 드디어 작은 초사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넉넉하지 못해 방 한 칸에 마루 한 칸밖에 지어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제게는 고대광실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집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나주 거평부곡은 고려시대의 말단 행정단위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집단 거주지였습니다. 소재 동 사람들은 욕심 없이 순박하여 아무런 계산 없이 정을 주고받는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도록 소재 동 사람들은 그저 순박한 마음 하나로 땔감이며 따뜻한 음식으로 정성을 다해 정 도전을 도왔습니다.
“이런 고마운 인정이 어디에 있을꼬?”
고려나라 온 천지가 쌀 한 톨 곡식 한 알로 다툼이었건만 그나마 나주 사람들은 너른 평야에서 나오는 산물들과 바닷고기 등으로 소박한 인정을 나누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섭도록 불어대는 겨울바람이었지만 이제 어느덧 해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