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균형 문행주 |
| 2018년 11월 14일(수)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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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부족한 천연자원과 자본에도 대한민국이 눈부신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중앙집권적 국가운영방식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가장 큰 부작용은 한마디로 ‘격차 확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지역간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각하게 확대되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남겨졌다. 지난 몇 년간의 경제 지표가 이런 한계를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천명하였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격차를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방식으로는 더 이상 대처할 수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대통령은 작년 10월에 여수에서 “자치와 분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며 “자치와 분권이 대한민국의 새 성장 동력”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에 맞춰 최근 자치분권위원회에서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난 10월30일 경주에서 개최된 자치박람회에서 대통령께서는 더욱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대한민국의 국가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개혁하여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자치분권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에 보면 ‘중앙권한의 획기적인 지방이양’과 ‘재정분권의 강력한 추진’이 핵심전략이다. 종합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권한과 재정이 지방으로 이양된다.
앞서 말한 우려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상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수레의 양쪽 바퀴로 비유한다. 양쪽의 수레바퀴가 힘의 균형을 맞추면서 작동하는 원리 때문이다. 그런데 한쪽의 바퀴만 너무 비대해져 움직이게 되면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권한과 재정이 지방정부로 이양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의 권한이 제자리라면 ‘지방’이라는 수례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지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되면 거기에 맞게 지방의회의 권한도 확대 되어야 한다.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권한과 재정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방의회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바로 지방의원의 전문보좌인력 도입이다. 그리고 전문보좌인력의 정원은 반드시 지방의원 정원내에서 마련되야 한다. 이번 자치분권 종합계획에는 보좌인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정수에 대한 규정은 없다. 최근 정부동향에 따르면 보좌인력의 정수를 지방의회 의원 정수의 1/3 또는 1/2범위내에서 규정한다고 한다. 전남도의회 의원은 한해 11조가 넘는 예산을 심의한다. 또한 각종 조례안 심사, 행정사무감사 등 보좌인력 1명 없이 지방의회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어려움이 너무 많다. 이번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따라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도입, 교육자치 강화, 지방세입 확충 등 일련의 과제들이 시행되면, 제대로 된 지방의원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의원은 의원 1명당 9명의 보좌인력이 지원된다. 수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정확하게 예산을 심의하는데는 보좌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해외의 경우 미국 뉴욕시의회는 시의원 개인에게 6명의 유급 보좌인력이, LA시의회는 15명의 보좌인력이 배치된다. 광역지방의회가 요구하는 광역의원 1인당 1명의 정책보좌관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미국 뉴욕·LA시의회 사례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전문보좌인력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균형을 맞추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그 외에 지방정부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지방의회 사무처 직원의 인사권 독립, 조례 제정범위 확대 등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번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이런 내용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다.
한편,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포함된 또 다른 우려는 ‘주민자치회’의 활동에 관한 사항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주민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정부가 법으로 강행한다는 발상 자체가 자칫 과거 독재시절에 만연한 ‘행정 동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히, 주민자치회가 주민을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은 선거제도를 통해 주민의 대표성을 갖게 된다. 주민자치회장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방선거 후에 보은인사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측근이 주민자치회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주민의 대표성과 무관하게 지방자치단체장의 측근인사가 행정과 재정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남용한다면 오히려 주민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주민의 정치참여를 의도했지만, 주민간의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가 되지 않는지 철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한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만연한 격차를 해소하고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는 새로운 국가운영방식이 이제는 현실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법률의 개정과 제도 개편이 수반되고 장기적으로는 개헌까지 이루어 져야하는 사회 대개혁이 필요한 과제다. 국가운영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계획하는 만큼,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