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의 역사 동화] 17, 이성계와 정도전의 전라도 - 형제의 우애로

2018년 11월 15일(목) 18:39

/그림:선성경

“나리! 평안하십니까요?”

“뉘시오?”

겨울 해가 서산에 저물 무렵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이 사람 만복이 아닌가?”

의복은 너덜거리고 다 닳은 짚신에 발가락까지 나온 상거지 꼴을 하고 나타난 만복은 정도전을 보자 소리죽여 울기시작 했습니다.

“아이고 나리…. 으헝헝…”

“마님은 평안하신가?”

요즈음 들어 더욱 보고 싶고 그리운 가족 생각에 긴 겨울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는데 만복이가 그동안 개경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알려 주었습니다.

“나리께서 뭐라 한 말씀 남기시지도 않고 떠나신 뒤로 마님께서는 곧바로 몇 뙈기 되지도 않은 전답을 파셨습니다요.”

“아니, 전답을 팔다니…, 그럼 가족들은 무엇으로 끼니를 잇는 단 말인가?”

“아니고 나리 걱정 마세요. 마님께서는 오히려 나리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십니다요.”

정도전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싸아 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

“전담이 팔리지 않아 애는 쓰셨지만 그래도 좋은 값으로 팔렸다고 얼마나 좋아 하셨는데요. 작은 돈이지만 이렇게 나리께 전달해 주시라고 서둘러 저를 보냈습니다요.”

그때서야 만복은 허리춤에 두른 엽전 꾸러미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런… 아니…. 그럼 대체 아이들과 식솔들은 무얼 먹고 산단 말인가?”

“마님께서 워낙 바느질 솜씨가 고와 양반들의 옷을 짓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일이 많아서 식솔들의 끼니는 너끈히 해결을 하고 계십니다요.”

“허어~ 명색이 왕을 모신 양반의 부인이 바느질로 끼니를 잇고 있다니….”

만복은 가정사와 조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일들에 대해서도 소상히 들려주었습니다.

‘여보, 참으로 미안하오. 아이들과 식솔들을 아녀자의 아름다운 솜씨와 덕행으로 잘 거두고 계신다니 진정 고맙고 장하오. 이곳 나주의 귀양생활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깨우치는 배움과 수양의 삶이니 염려치 말고 부디 건강하시오.’

격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고 구구절절 편지글을 쓰며 맺으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가서 마님께 전하게.”

만복이 가고 난 뒤 겨울날씨는 더욱 혹독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주사람들의 인정은 한결 같이 따뜻했습니다. 귀양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지극한 예로써 정성껏 대해 주어 오히려 정도전이 그들에게 항상 사람 사는 도리를 배우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이런! 또 귀한 고기 안주에 술이라니, 누가?”

“제사라도 지냈나? 이 춘궁기에 보리쌀 한 줌도 아쉬울 터인데 이렇게 귀한 쌀밥으로…”

나주 사람들의 사랑은 이렇게 깊고도 소리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차마 한 술 뜨기조차 아까운 하얀 쌀밥을 멀리서 귀양 온,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죄인에게 정성껏 대접하는가 싶은 인정에 정도전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내가 궁핍한 것을 불쌍히 여겨서인가. 아니면 먼 지방에 사는 까닭에 내가 죄인인 것을 몰라서인가?’

한 밤을 뒤척이며 생각해 봐도 헤아릴 길 없는 나주 사람들의 고마운 정이었습니다.

‘그래… 나도… 마음을 열고 이들과 형제의 우애를 쌓아 가자. 얼마나 고마운 인정들인가?’

황연이 땔감을 아끼지 않고 군불을 땠는지 밤이 깊도록 구들장은 따뜻했고 정도전은 새벽이 밝아올 즈음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습니다.

우왕이 왕위에 오르자 그를 옹립했던 이인임이 완전히 정권을 장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으하하하…. 드디어 모든 권력을 내가 틀어쥐게 되었도다.”

이인임의 신임을 받았던 최영도 이때부터 고려 정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왕이 즉위했다는 소식에 원나라에서는 심양왕 왕고의 아들 탈탈불화를 고려의 왕으로 봉해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하추는 펄펄 뛰었습니다.

그는 명나라에 투항한 장수였는데 공민왕이 아들이 없었는데 누가 왕위를 계승 했느냐며 명나라를 등에 업고 고려조정을 윽박질렀습니다.

1377년(우왕3년) 원나라가 우왕을 정식으로 고려 국왕에 봉함으로써 그동안 위태롭던 왕위문제는 3년 만에 해결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