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건축가 이타미준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2018년 11월 15일(목) 20:08

세계적인 미술작품들이 광주와 전남 곳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광주비엔날레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막을 내렸다. 전시장뿐만 아니라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옛 전남도청 회의실에서 현대미술작품이 그 장소의 기억을 불러냈고, 목포에서는 수묵의 현대적인 실험과 전통의 정신을 담아 구도심에까지 그 묵향이 퍼지며, 삶 깊숙이 예술이 스며들었던 국제비엔날레의 책장을 넘겼다. 남도는 이 가을 예술에 흠뻑 취했다.

남도에서도 남도, 바람 많은 제주를 11월에 가봤는가! 제주 나무숲 사이로 비치는 빛과 색, 물과 바람과 돌들이 펼치는 찬란한 가을…. 자연의 아름다움 극치를 보여준다는 11월에 바람을 예술로 만든 작품을 찾아 제주여행을 했다. 2011년에 지구별을 떠난 천재 건축가의 창조성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이자 건축가 이타미준, 그가 만든 시공간을 만나러 가는 특별한 걸음. 가까운 제주에 이타미준의 인생걸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의 예술적 통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건축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은 시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나에게 공간은 곧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람의 건축가’로 불리는 이타미준, 그는 재일교포 2세로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 슬하 8남매 중 한 명이었으니, 그의 성장기 깊은 고뇌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을까? ‘내가 존재하는가?’라는 자존에 대해, 민족에 대해, 인간에 대해…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에 대해!

고국을 사랑한 이타미준, 내가 제주에서 맨 먼저 만난 이타미준의 작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한 포도호텔이었다. 제주의 자연과 삶을 호텔에 담아낸 것.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송이의 포도모양처럼 보이는 호텔이다. 제주의 작은 집모양의 지붕들이 하나의 포도송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붕구조의 호텔이고 산방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위에서 보면 둥근 포도알들이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입구 게이트에는 관 모양의 직사각형의 문이 아닌 문이 있다. 내부에는 건물 중앙을 뚫어 하늘이 보이고 자연광이 직사각형의 낮은 정원을 비추고 있다. 내가 정원을 바라보자 바람이 정원의 꽃잎들을 흔들고 있었다.

두 번째로 만난 작품은 방주교회다. 방주교회는 높은 십자가가 없었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들어갈 수 있는 교회다. 물위에 배처럼 떠 있는 듯 집 한 채가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징크지붕은 작은 은색의 삼각형과 흑색삼각형이 조합돼 기하학적문양을 만들며 은은한 광택으로 마치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고, 검정색 창문틀의 세로 선이 그대로 물에 반사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이 마치 명상에 잠긴 고래처럼, 숨 쉬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방향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빛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세 번째로 만난 작품은 수풍석박물관이다. 물, 바람, 돌. 제주에 가장 흔한 자연물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세 개의 건축조형물이다. 관람순서는 돌, 바람, 물박물관 순서다. 돌박물관(석박물관)은 붉은 녹이 슨 철판 직육면체구조물의 통 유리창 앞에 부처의 손 돌조각이 놓여있다. 철판은 돌을 돋보이게 하는 물질성을 갖춘 것이고, 누워있는 직육면체 천정 모서리에 굴뚝처럼 솟은 원통형 구조물이 하늘의 빛을 담아 실내에 국부조명의 역할을 하며, 시간대에 따라 실내에 설치된 돌을 비추는 각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매 순간의 시간을 빛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뚫어놓은 모든 창은 언제 봐도 그림 같은 제주의 풍경을 사각의 프레임에 보여줬다. 그 풍경 중앙에 자연석이 놓여있었다. 자연정원의 길을 따라 바람박물관(풍박물관)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언덕위의 나무오두막이 억새풀숲에서 무채색의 소박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무의식속의 ‘집’의 원형 같은 모습을 하고 서 있는 나무집은 내부에 바람이 숭숭 통하는 바람의 집이었다. 나무 사이사이를 비워서 빛과 바람이 관통하며 제주의 바람소리가 들리게 구조화돼 있었다. 그토록 제주를 여러 번 왔으나 제주 바람의 소리를, 나는 이 바람박물관 안에서 처음으로 들었다. 아니, 처음으로 울고 있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환영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물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물박물관(수박물관)에서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답고 단순하게 자연의 모든 것을, 그 변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천재 건축가 이타미준의 통찰과 오감을 통해서 제주의 11월과 바람을 담고 왔다.